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소재 등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자국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관 직원을 대상으로 일제히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맞서 한국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비롯해 국회와 경기도의회, 수원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단체에서 수출 규제 철회를 요구하며 규탄대회를 벌이고 있다. 특히 일본의 수출 규제 경제보복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국내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인 ‘일본 NO’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 여행은 물론 일본 제품, 심지어 일본 음식까지도 먹지 말자는 분위기다. SNS 단톡방에는 바코드에 표기된 일본 국가 번호인 45, 49를 올리고 물건을 살 때 일본 제품이면 구매하지 말자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22일 한 단체의 자문회의가 있었는데 이에 앞서 지난 주말 중식 메뉴를 묻는 문자가 필자에게 왔다. 담당자의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 메뉴를 빠르게 스캔한 뒤 1등으로 답변을 남겼다. 제일 먼저 고른 메뉴는 함박스테이크와 일본식 커리라이스였다. 두툼한 함박스테이크에 치즈 그리고 계란이 올라간 커리라이스라는 설명을 보고 단숨에 골랐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모두 이 메뉴를 고르는 것이 아닌가. 괜히 제일 먼저 메뉴를 골라 나중에 독박(?)을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일본식 커리라이스를 선택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회의 당일 한 참가자가 지난 주말 쇼핑센터에 갔는데 유니클로 매장에 손님이 없었다면서 “우리 일본식 커리를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메뉴 선택이 잘못된 것을 지적해 왔다. 뭔가 불안한 예감은 항상 적중하는 법이다. 일본식 커리 선택이 문제가 된 것이다. 농담처럼 오가는 얘기 중에 일본 제품은 물론 스시를 비롯한 일식도 먹으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같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보다 확산되면 닛산이나 도요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테러도 일어날 판이다.
확실히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는 우리 국민 정서상 나올 수 있는 사회 현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들의 수출 규제를 현실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다. 일본 제품 불매나 규탄은 단순히 정서적인 문제다. 정부와 기업은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하고 일본을 압도적으로 굴욕 시킬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 카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원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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