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하루 전 날인 8월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고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이다. 1990년 6월 일본이 ‘일본군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하자, 격분한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잊고 싶고, 숨기고 싶은 과거였겠지만 김 할머니는 당당히 역사의 증언대에 섰다.
김학순 할머니는 베이징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했다. 다행히 4개월 만에 빠져나왔고, 그때 탈출을 도왔던 평양출신 조선인과 결혼해 딸, 아들을 낳았다.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고, 서울 종로구의 판잣집에서 궂은 일을 하며 힘겹게 생활하던 김 할머니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부정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이자 ‘위안부 범죄’ 폭로를 결심했다. 할머니의 용기있는 고백으로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은폐됐던 위안부 문제가 세계로 알려지게 됐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1992년 1월8일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수요집회’가 시작됐다. 그날 이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 할머니는 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하며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했고, 1991년 12월 일본 도쿄지방법원에 출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등 국제사회 문제로 확대하는데 여생을 바쳤다.
2012년 12월 ‘제1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는 김 할머니의 최초 증언일인 8월14일을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로 지정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날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에서야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14일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자 1천400번째 수요집회가 열리는 날이다. 두 날이 겹친 것은 처음이다. 올해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반일 정서와 일본 국제예술제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하루 만에 중단된 것 등이 영향을 미쳐 집회 규모가 커졌다. 서울ㆍ수원ㆍ안양 등 한국의 12개 도시와, 일본ㆍ미국ㆍ영국ㆍ대만 등 세계 9개국 21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린다.
정의기억연대는 1천400번째 수요집회에서 일본정부에 전쟁범죄 인정, 공식 사죄와 배상을 포함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도록 촉구할 예정이다. 일본은 여전히 망언을 일삼고 뻔뻔하게 외면할 것이다. 그들이 역사의 진실을 은폐하고 사죄하지 않는 한 수요집회의 불길은 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