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700살 빙하의 장례식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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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아이슬란드에서 ‘빙하 장례식’이 열렸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북동쪽에 있는 오크(Ok) 화산을 700년간 덮고 있었던 ‘오크 빙하’다. 오크 빙하는 1980년대까지 해발 1천198m의 오크 화산 정상 일대를 넓게 덮고 있었다. 한때 면적이 16㎢에 달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면적과 두께가 서서히 줄었고, 2014년 빙하 연구자들로부터 ‘죽은 빙하(dead ice)’ 판정을 받았다. 현재 오크 화산은 정상에 있는 분화구에만 얼음이 덮여있는 상태다.

오크 빙하의 장례식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해 미국 라이스대학 기후학자들이 마련했다. 오크 화산 정상 부근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를 비롯해 전 세계 기후전문가, 환경운동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오크 빙하 앞에는 ‘미래로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동판 추모비도 세웠다. 동판에는 ‘오크는 아이슬란드에서 최초로 빙하 지위를 잃었다. 앞으로 200년 사이 아이슬란드의 주요 빙하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이 추모비를 세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식하고 있음을 알린다’는 내용을 새겼다. 그 아래엔 ‘2019년 8월’이라는 날짜와 함께 최근 관측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415ppm’을 넣었다. 이는 1년 전보다 대폭 상승한 수치다.

오크 빙하가 2014년 소멸 판정을 받았을 때만 해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지난해 라이스대학 소속 인류학자인 시멘 하우, 도미닉 보이어가 사라진 빙하를 소재로 ‘낫 오케이’(Not Ok)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면서 화제가 됐고, 추모비 아이디어도 나왔다. 보이어는 “사람들은 동판에 업적이라든지 대단한 사건을 새긴다. 빙하의 죽음 역시 좋다고 할 수 없지만 인간이 이룬 일”이라며 “이 빙하를 녹게 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변화였다”고 말했다. 그는 오크빙하가 녹기 시작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다른 유명 빙하들도 곧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아이슬란드엔 2000년 당시 300개 넘는 빙하가 있었는데 2017년까지 작은 빙하를 중심으로 56개가 녹아 사라졌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남은 빙하들도 200년 내에 모두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이 진단했다. 기상관측 사상 가장 무더운 여름인 올해 북극권 지역에선 빙하가 녹아내리는 양이 급증했다. CNN은 “지난달 그린란드에서 녹아내린 빙하만 총 1천970억t에 이른다”고 전했다.

빙하 장례식, ‘별 장례식 다 있네’라며 가볍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로 인한 많은 피해를 경험하거나 목격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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