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편집된 기억속에 살아간다… 7년만에 돌아온 은희경 신작 ‘빛의 과거’

▲ 은희경-빛의 과거
▲ 은희경 빛의 과거

작가 은희경이 7년 만에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기억의 왜곡과 편집을 소재로 한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 刊) 다. 지난 2012년 <태연한 인생> 이후 긴 공백을 깨고 펴낸 장편소설이다. 오랜 시간 구상과 퇴고를 거쳤다.

<빛의 과거>는 1977년과 2017년을 교차했다. 갓 성년이 된 여성들이 기숙사라는 낯선 공간에서 마주친다. 이들의 ‘다름’과 ‘섞임’의 세계를 면밀히 그려냈다. 2017년 화자인 ‘나’는, 작가이자 오랜 친구인 김희진의 소설을 읽으면서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린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서로 기억하는 ‘그때’의 질감은 너무나 다르다.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라고 한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은희경은 기숙사 룸메이트들을 통해 다양하며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을 제시했다. 신입생 기숙사 이야기인 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타인의 허물은 잘 지적하면서도 자신 역시 똑같은 허물을 반복하는 자, 무리에 끼지 않고 자기 방식과 고집에 충실한 자,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주인공과 정반대로 욕망에 충실한 자, 생각과 행동의 괴리가 큰 자 등 다양한 성격이 어울리고 부딪친다. 사람 사이의 상투적 관계와 그에 따른 소통의 단절을 드러내는 은희경 특유의 냉정한 시선은 여전히 살아있다. 책 속 김유경의 ‘편집된 과거’를 들추는 김희진 소설은 액자식으로 소설 중앙을 차지한다. 이를 통해 기억의 왜곡, 위장된 욕망, 자기방어의 허위, 의무의 회피 등을 촘촘하게 드러낸다.

섬세한 1970년대의 문화와 시대상은 ‘역시 은희경’이라는 찬사가 나오게 한다. 경양식집 ‘세실’, 대학 가요제, 맛동산, 티나 크래커, 밀감으로 채운 입사 환영식, 음악 감상실 등 1970년대 문화 코드를 눈앞에서 보듯 그려냈다. 날카롭게 인간의 본성을 그려내면서도 유머러스한 글은 여전하다.

작가는 누구나 자신의 기억은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상황에 맞게 편집된 기억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그러면서 회피를 무기 삼아 살아온 한 개인이 어제의 기억과 오늘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민낯을 직시해 담담하게 토로하는 문장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며 가진 보편적인 고민을 드러내며, 독자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책 속 화자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는 ‘은희경’의 손길을 거쳐 오늘의 나,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값 1만 4천 원.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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