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나온 집’이라고 써 붙인다. 이게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한 집 건너 한 집꼴이다. 이러니 웃지 못할 현수막도 등장한다. ‘TV에 나올 집’. 그만큼 TV 출연은 명소(名所)의 기본 요건이다. 식당만 그런 게 아니다. 유명한 관광지, 휴양지도 똑같다. 용인 고기리 계곡도 그런 곳이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나왔다. 유재석, 박명수가 물놀이를 했다. 수박도 깨 먹으며 놀았다. 옆 식당에는 현수막이 붙었다. ‘무한도전에 나온 곳.’ ▶얼마 뒤, 젊은 학생들 대여섯 명이 계곡을 찾았다. 모두 이런저런 짐을 잔뜩 들고 있었다. 문제가 생겼다. 계곡으로 내려갈 통로가 없었다. 계곡 옆 도로를 따라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주민에게 ‘계곡에 어떻게 내려가요’라고 물었다. ‘길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랬다. 고기리 계곡은 들어갈 수 없는 계곡이다. 정확히는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계곡이다. 길이 2㎞가 넘는 전체 계곡이 펜스로 막혀 있었다. 방송과 다른 모습이었다. ▶가평, 포천 등 도내 곳곳에 계곡 명소가 있다. 대부분 이렇다. 도로와 계곡사이에 펜스가 설치돼 있다. 명분은 ‘안전 펜스’인데, 실제는 ‘출금 펜스’다. 혹여 펜스를 넘어들어갈라치면, 금방 불호령이 떨어진다. ‘여기는 사유지다. 당장에 나가든지 음식을 시켜라.’ 인근에서 영업하는 식당 주인이다. 펜스 대부분은 지자체가 설치했다. 공적 시설인 펜스가 식당엔 보호시설인 셈이다. ▶경기도와 지자체가 벌인 계곡 불법 퇴치 운동이 성과를 냈다. 독버섯처럼 퍼져 있던 계곡 불법 상행위가 사라졌다. 70여 곳이 경기도 특사경에 철퇴를 맞았다. 지자체 계도에 따라 자진 철거한 곳도 많다. 잘한 일이다. 그런데 부족한 면이 있다. 계곡 불법 퇴치에 나선 궁극적 목적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이재명 도지사가 이렇게 강조했었다. “계곡과 하천을 시민에게 돌려 드리겠다.” ▶맞다. 펜스를 뜯어내는 것이 이번 운동의 끝이다. 시민들이 언제든, 어디로든 계곡에 닿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나름의 대책은 엿보인다. 하천 진ㆍ출입 통로와 계단을 만들겠다는 지자체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다. 어느 식당 쪽은 터주고, 어느 식당 쪽엔 계단을 놔줄 건가. 기본적으로 모든 펜스를 철거해야 한다. 차량 안전은 볼라드 등 장치로 하면 된다. 자연친화적인 시설들도 널려 있다. 펜스를 뜯어내야 한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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