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3일 뉴욕 정상회담은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다. 문 대통령은 조속한 미·북 실무대화와 3차 미·북 정상회담 성사를 희망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17차례 독점하면서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미국과 북한이 전쟁 상태였을 것이라면서 “오랫동안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았고, 단거리 미사일은 많은 나라가 시험한다”고도 했다. 북한 김정은과의 관계는 과시하면서, 우리에 대한 핵 위협에 대해선 둔감하게 답한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보면서 우리의 안위를 과연 트럼프와 상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은 수십 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미국의 핵우산뿐이지만 제대로 펴질지 의문이다.
지난 7일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공개강연에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실패하면 한국과 일본도 핵무장에 나서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헨리 키신저 박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가능성을 언급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비핵화 협상을 자기 치적으로 삼고 싶어 하지만,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제로다.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나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함으로써 핵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길일 수 있다. 냉전 이후 입증된 ‘상호 핵 공포’의 역설이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교수는 ‘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이라는 책에서 한·일 동반 핵무장을 통해 한·미·일과 북·중·러 6개국이 핵 균형을 이루는 것이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를 구축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사실 핵 문제에 대해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원칙적으로는 핵확산에 반대하지만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사람이다. 후보 시절 미국의 방위비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한·일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우리 국민의 과반수가 핵무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지난 25년 동안 북핵 협상이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핵무장의 대전제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해야 한다. NPT 제10조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지상(至上)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판단할 경우,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당장 현실적 핵무장이 어렵다면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무기 공유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나토식 핵 공유는 미국 영토인 괌에 있는 전술핵을 우리가 장기임차하는 형태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선의’와 ‘자비’에 의지하는 순진한 지도자가 아니라면 언제까지 북한 핵에 발목이 잡혀 끌려다니며 살 것인가. 이제 국가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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