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님이 젊은 스님과 길을 가다 개울을 만났다. 마침 개울가에는 물이 깊어 건너질 못하고 도움을 기다리는 여인이 있었다. 큰 스님은 여인의 부탁을 받고 그녀를 등에 업어 개울을 건넜다. 그리고 스님 등에 업혀 물을 건넌 여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길을 갔다. 잠시 후 젊은 스님이 큰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어찌하여 부처님 도를 닦는 스님으로서 여자를 등에 업었습니까?” 그러자 큰 스님이 대답했다. “나는 이미 물을 건너자 그 여자를 등에서 내려놓았는데 너는 아직도 그 여자를 등에 업고 있느냐?”
어떤 분이 요즘 성범죄에서 큰 이슈가 되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큰 스님은 ‘성인지 감수성’에서 초월했고 젊은 스님은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세간에 결정적으로 등장한 것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 여비서 성폭행사건 재판이 진행되면서다. 때마침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청문회 파동이 정점에 달할 때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대법원 판결이 나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사실은 그 속에 대단히 중요한 핵심이 들어 있었다.
성인지 감수성이 그것인데 대법원이 이것을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앞으로의 모든 형사재판, 특히 성범죄를 다루는데 절대적 존재로 떠오른 것이다.
안 전 지사는 1심에서는 ‘위력은 존재하나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및 강제추행이 인정되어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그리고 마침내 9월9일 대법원은 2심의 판결을 확정 짓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성차별 없는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데 있어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했으며 앞으로 비슷한 사건은 이번 대법원 판례가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안 전 지사의 수행 여비서 김모씨가 성폭행을 당하고서도 지사가 순두부 식당을 알아보라고 한 것을 이행하였고 지사 부부와 와인바에 함께 간 것 등이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답지 않다는 반론에 대해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위장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입장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도지사 수행비서라고 하지만 ‘별정직 지방공무원인사규정’에 의하면 도지사는 아무 때고 임명, 휴직, 면직, 징계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 ‘무형의 힘’을 가진 존재 앞에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2차 피해를 두려워해야 할 입장에서 김씨의 행동을 봐야 한다는 것. 성인지 감수성에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어느 여대생이 중국 문화탐사 여행 중에 지도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여대생은 저항하지 않았고 항의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탐사여행을 마쳤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었지만 그럴 때 탐사여행은 망가져 버리고 탐사보고서에 대한 점수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탐사 보고서는 곧 학점에 반영되는 것이었다.
이 여학생이 사법당국에 문제를 제기했다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재판에서처럼 ‘위력은 있었으나 행사되지않았다’는 것으로 그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을 수도 있다. 즉시 항의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여행을 계속한 것이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제 이와 유사한 재판에서도 양성평등의 실현 차원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를 보여줬다고 하겠다. 그동안은 유사한 사안에 대해 판사마다 인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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