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서도 춤추고 떼창…“BTS”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ove)가 흐르자 아바야(목부터 발목까지 가리는 검은색 긴 통옷)를 입은 여성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다.
불과 2년여 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선 공공장소 등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춤을 추는 것이 금기였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을 향한 마음 앞에선 엄격한 종교적 율법도, 체득된 보수적인 관습도 소용없었다.
11일 오후 7시30분(이하 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킹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LOVE YOURSELF: SPEAK YOURSELF)에서다. 방탄소년단은 이곳에서 해외 가수 최초로 스타디움 무대에 올랐다.
일찌감치 객석을 채운 사우디 아미(팬클럽)의 행복감은 현장에서 고스란히 전달됐다.
여성 팬 대부분이 아바야를 입고 얼굴에 니캅, 히잡, 차도르를 썼지만, ‘꿈에 그리던 스타’의 뮤직비디오가 스크린에 나오자 아미밤(방탄소년단 공식 야광봉)을 흔들며 한국어 가사로 ‘떼창’ 했다. 추임새가 들어갈 타이밍도, 발음도 정확했다. 멤버들 이름을 차례로 부르고 “BTS”를 연호하는 응원 구호 역시 절도 있었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지역 공연장 열기와 온도 차가 없었다.
2년 전만 해도 여성들의 축구경기장 입장을 허용하지 않던 사우디에서 남녀 관객이 한 공간에서 관람하는 모습은 근래 개방과 개혁에 가속도가 붙은 사우디 변화상을 엿보게 했다.
또 춤과 음악이 금기시된 지역에서 퍼포먼스로 채운 대규모 공연이 열리고, 여성들이 소리 높여 환호하는 모습은 다수 현지인에게도 놀라운 듯했다.
19살 때부터 사우디에서 살았다는 요르단 출신 남성 라드완 아따윌(53) 씨는 “처음 보는 어메이징한 풍경”이라며 “10대들이 더 행복해지고 오픈 마인드가 된 것 같다. 놀랍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조명이 들어온 무대에 거대한 표범 모형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자 공연이 시작됐다.
첫곡 ‘디오니소스’(Dionysus)부터 플로어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해 방탄소년단을 눈앞에서 본 감동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3만 관객이 손에 든 아미밤은 이들의 상징색인 보라색 등 다양한 빛깔로 물결을 이뤘다.
관객들은 진의 손 키스, 뷔의 미소, 지민의 손동작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환호했다. 휴대 전화 라이트를 일제히 켜거나, 멤버들 제안에 파도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30도를 훌쩍 웃도는 날씨에 멤버들은 2곡 만에 비 오듯 땀을 흘렸다. 그런데도 완전체, 솔로, 유닛 무대로 변화를 주며 길게 뻗은 돌출 무대까지 누비며 시종일관 가벼운 발놀림을 보였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와 ‘불타오르네’(Fire), ‘아이돌’, ‘페이크 러브’(Fake Love)로 이어지는 히트곡 퍼레이드에선 가장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관객들은 아미밤을 열렬하게 흔들며 합창했다. 흰색 토브(아랍 전통 의상)를 입은 남성 관객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인증샷’을 찍으며 리듬을 탔다.
2시간40분 동안 24곡을 선사한 멤버들은 사우디까지 온 기쁨과 대형 공연장을 채워 준 아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사우디에서 오늘 처음인데 너무 즐겁게 즐겨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시 와도 될까요? 정말 다시 와도 될까요?”(슈가), “다음에 또 여기 꼭 오고 싶고…우리 또 봐요”(뷔)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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