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권력, 기계가 더해진 시대, 트레버 페글런 <기계 비전> 백남준 아트센터 개막

▲ 트레버 페글렌

“기계들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시 사회를 재구축하지요. 세계의 질서가 핵무기 기술을 필요로 해 탄생했고, 핵무기가 존재하면서 세상이 다시 재편됐습니다. 모든 각각의 기술은 사회비전을 담고 있어요.”

혁신적인 실험으로 시각 예술의 지평을 넓혀가는 작가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의 국내 첫 개인전이 16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막했다. 2018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작가 기념전 <기계비전>이다.

예술가이자 지리학 박사이기도 한 트레버 페글렌은 다매체를 활용해 군사와 정보 조직의 비밀스러운 감시 장비를 암시적으로 노출하는 작가다. 기계비전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업세계를 확장해온 작가의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디지털 세계의 숨겨진 풍경과 금지된 장소에 대한 지도’라고 명했다.

전시는 비디오, 사진, 설치 작품 등 19점을 선보인다. 디지털 세계의 비트 단위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의 세계를 거리낌 없이 넘나들며 정치 권력, 감시, 이에 디지털이 더해지면서 보이지 않는 국가 감시체계를 시각화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고스란히 펼쳐냈다.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나온 그의 사회성 짙은 고민과 상상력은 정치와 미학을 결합하는 압도적인 예술작품으로 탄생했다.

<89곳의 풍경>은 이런 고민에서 나온 대표적인 작품이다. 2013년 미 NSA의 광범위한 도ㆍ감청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사태가 모티브가 된 이 작품은 우리를 지배하는 감시와 권력을 보여준다. 작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감시와 통신 시스템, 인터넷 연결망의 집결지인 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런던과 군사기밀 목적으로 설립된 정보국 건물 등을 촬영했다. 작가는 이러한 권력이 기반시설을 바탕으로 구축됐음에 주목하고 내부에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권력시스템을 직시한다.

비디오 작업 <이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바라보라!>는 인공지능이 기존에 인식해 온 사물, 감각, 인물에 대한 이미지 데이터를 주입하고 조합해 새로운 형상을 재탄생한다. 이들의 모습은 때로는 기괴하고 흉측해 마치 괴물이나 유령처럼 섬뜩하다. 작가는 관객이 이렇게 생산된 결과물을 마주하는 순간, 기술이 우리가 원했던 세상을 만들어 주고 있는지,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심사위원 5명의 만장일치로 수상작가에 선정된 트레버 페글렌은 백남준의 예술성을 많이 닮았다. 페글렌은 “시대를 앞서 다양한 미디어로 활동한 백남준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가르쳐줬고, 큰 영감을 준 사람”이라며 “백남준과 연계해 인정받았다는 것은 가장 큰 영광 중 하나”라고 소감을 밝혔다.

전시는 2020년 2월 2일까지 열린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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