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언론의 패가망신

‘김 기자’가 햇병아리 시절이었다. 한 법무사의 비위를 검찰이 수사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법무사가 얼마 전까지 계장으로 근무하던 법원이었다. 기자실에는 ‘자기 식구 출신 감싸기’라는 평이 돌았다. 두 개 신문사가 이를 보도했다. 그 중 하나가 ‘김 기자’였다. 영장은 재청구됐고 법무사가 구속됐다. 1년여 뒤, 항소심이 무죄를 선고했다. 법무사의 손해배상 청구에 그 법원이 ‘1천만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90년대 ‘1천만원’. ‘김 기자’ 연봉의 절반에 육박하는 돈이다. 어렵게 대출을 받아 전부 물어줬다. ‘김 기자’를 평생 따라다니는 공포다. 높은 자리에 올라서도 그때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비단 ‘김 기자’만의 얘기는 아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오보와 책임’이라는 공포 속에 산다. 55년을 언론인으로 산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이 자서전을 냈다. 2008년 출간된 이 책의 제목이 많은 언론인의 공감을 샀다.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언론 관련 발언을 했다. 25일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서다. “왜곡해서 (기사를)쓰면 완전히 패가망신하는 그런 제도들이 도입돼야 한다”고 했다. 미국식 징벌적 배상제도를 덧붙여 설명했다. “누가 얘기하면 무조건 쓰고 나중에 무죄로 판결이 나와도 보도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문제”라고도 했다. ‘김 기자’처럼 경험이 있는 기자들에겐 듣기만 해도 가슴 철렁하는 소리다. ‘오보 쓰면 패가망신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 상황에서는 딱히 적절한 언급은 아니다. 그가 전제한 것은 조국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 행태다. 조국 보도의 논점은 ‘오보’가 아니라 ‘논조’다. 표창장 위조 의혹은 오보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어떤 신문은 ‘일반화돼 있는 작은 문제’라 쓰고, 어떤 신문은 ‘천인공노한 큰 문제’라 쓴다. 그 견해의 차이를 패가망신의 예로 설명하면 안 된다. 논조(論調)를 막는 건 언론자유 침해다. ▶무죄 비보도 지적도 오류다. 몇 해 전 국감에서 이런 지적이 있었다. ‘무죄선고를 받은 피고인 1천585명 중 4.5%인 72명만이 무죄 사실이 공시됐다’. 통계는 맞다. 다만, 원인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 많은 피고인이 무죄 공시를 원치 않는다. 잊힌 기억을 되살리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언론도 똑같다. 무죄 보도를 원하면 안 해 줄 재간이 없다. 많은 당사자가 ‘두 번 죽이는 보도’라며 원치 않으니 안 쓰는 것이다. 언론인에겐 ‘폼 나는 순간’보다 ‘무서운 순간’이 훨씬 많다. 요즘 언론인은 특히 더하다. 박 시장은 언론인인 적이 없다. 그러니 공포감 없이 저런 말을 하는 것 같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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