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삶이 시작된 청춘들… 부조리를 살아가는 분노의 다른 이름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 1999.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의지로 희망의 근육을 키워냈던 찬란의 시절들을 우리는 ‘젊은 날의 초상’이라는 낭만적 수사로 회상한다. 번개처럼 내리 꽂히는 의지로 불가능의 벌판을 내달렸던 청춘의 시간들은 맹렬했다. 좌절도 아름다웠고, 실패도 기꺼웠다. 그래서 더없이 빛나는 시간으로 모두에게 기억된다. 그러나 이제 청춘은 그렇게 빛나지 않는다. 1989년 3월 7일 새벽 3시 30분 서울의 한 심야극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시인 기형도. 스물아홉, 그의 죽음은 어두웠다. 그가 ?장밋빛 인생?이라는 시에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고 말한 순간부터 우리시대의 청춘들은 탄식하고, 질투하며 부조리의 세계를 서성이는 쓸쓸한 이방인의 삶이 되었다. 정녕 그러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 같다는 낯설고 막연한 두려움의 고백이 시 ?질투는 나의 힘?에 깔린 어두운 탄식일 것이다.
“세계의 두꺼움과 낯설음, 그것이 부조리다.”라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말처럼 넘어설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부조리의 두꺼운 벽 앞에서 시인은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라고 말한다. 그것은 너무도 힘겹고 뼈아픈 고백이어서 ‘질투’라는 말이 지닌 부정적 어감을 느낄 겨를조차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또한 묻게 된다. 과연 질투는 힘이 될까? 한때 많은 ‘공장’을 세워 뭔가를 기록하려했던 어떤 능동의 시간들이 어리석음으로 되돌아올 때 세계의 실상은 두렵고 낯설어진다. 누구도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계의 냉정과 그 세계를 ‘개처럼’ 쏘다니며 ‘공중’에서 머뭇거렸던 날들의 수많은 부딪힘이 시인이 말하는 질투였다면, 그로인해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는 짧은 글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우리가 다시 읽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모두의 비극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질투의 힘을 믿는다. 질투란, 부조리를 살아내기 위해서 부조리를 사는 분노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질투하고 분노하며 스스로를 미친 듯이 사랑해봐야겠다. 이것이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있으라.”(?비가2-붉은 달?)라고 말한 기형도 시인을 추모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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