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늬만 지방자치, 차라리 못하겠다고 하라

지난 10월 29일이 ‘지방자치의 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도 몰랐을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승리로 10월 29일 헌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 직선제 도입과 함께 지방자치가 부활했기 때문에 그날로 결정을 했다. 지금 지방자치는 과연 제대로 되고 있는가? 사실 국민은 별로 관심도 없다. 왜 자신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고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지방자치에 관심이 없을까?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수처법이나 선거법 관련 기사는 넘쳐나지만 이른바 ‘지방자치분권 3법(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지방이양일괄법제정안, 자치경찰제 시행을 위한 경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장기간 계류·방치돼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시도·시군구의회의장 협의회에서 한 목소리로 법안 통과를 촉구했지만 그들만의 행사였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지방분권과 지방재정의 확충이다. 권한과 돈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공염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분권과 지방세 비율을 임기 말까지 40%로 하겠다는 공약을 했으나 이미 실현은 불가능하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지방분권을 헌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자치 입법, 행정, 재정, 복지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헌법 개정은 고사하고 기본 법령 제·개정도 못하고 있다. 야당을 탓하나 근본적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방분권이 실현되고 지방재정이 확충되면 시장, 군수, 구청장의 권한이 막강해져 자신들의 권위와 위치가 위태로워지지 않을까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지방자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주민 스스로 자신의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민주주의를 고양하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또 지역 실정과 주민들의 요구에 맞는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원적 사회와 균형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지방자치가 법·제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선 중앙 정부 주도로 자치의 틀과 토대를 만들어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실천 전략도 세울 수 있다. 진정한 지방자치는 지방세 비율을 높이고 자치경찰제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쥐고 있는 권한을 제대로 이양하고 거기에 따른 재원을 주면 된다. 작년도 지방교부세는 43조8천억원 규모였다. 지방재정 수입 중 41%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교부세가 대부분 중앙정부의 보조사업에 의무적으로 매칭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이러고도 지방분권을 외칠 수 있나? 알량한 권한 몇 개 이양해 놓고 마치 큰 권한을 준 것처럼 행동한다. 지엽말단의 시시콜콜한 권한도 중앙부처에서 좌지우지한다.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바꿔야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라도 문 대통령의 결단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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