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사라진 여주시 향토유적…유적 훼손 사실 알고도 여주시는 ‘나몰라라’

조선시대 문인 ‘박준원의 묘’
후손들 “관리 어렵다” 자체 제거
市 “문화재 아니라 고발 불가능
유적보호委 자문받아 제외 조치”

공터가 된 박준원묘자리
공터가 된 박준원묘자리

여주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조선시대 문인 박준원의 ‘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유지ㆍ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후손들이 ‘자체 제거’한 것인데, 여주시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2년째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여주시와 여주문화원 등에 따르면 여주문화원은 최근 ‘지역문화재 기록사업’ 진행 중 여주시 향토유적 제9호인 ‘박준원 묘ㆍ신도비’ 중 묘비와 주변 석물들이 통째로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이날 실제 묘가 있었던 여주시 가업동 산7-1 일원을 찾아가 보니 그곳에는 포크레인과 발자국만 있을 뿐 묘가 있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묘비 옆에 있던 묘표는 약 70m 떨어진 신도비 옆에 옮겨져 있었고, 그 외 혼유석ㆍ상석ㆍ향로석ㆍ고석ㆍ망주석 등 옛 석물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조선 23대 왕 순조의 외조부이기도 했던 박준원의 묘ㆍ신도비는 1986년 여주시 향토유적으로 처음 지정됐다. 당초 묘역은 원형대로 잘 보전돼 있었으며 각 석물들은 당대 유행하던 문양 장식을 자제하고, 기능성을 강조해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묘 행방불명’ 해프닝은 향토유적 관리자로 지정된 박준원 일가 후손들의 뜻으로 확인됐다. 묘가 향토유적으로 지정됐을 때부터 관리해온 후손들이 고령화로 인해 유지ㆍ관리에 어려움을 느끼고 묘를 없애버린 것이다. 후손들은 지난 2016년 ‘유지ㆍ관리 어려움’을 이유로 여주시에 향토유적 해제 조치 또는 시에서 묘를 매입, 대신 관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시는 후손들에게 ‘보존’을 권유하며 거절하자 후손들은 이듬해 6월 시에 어떠한 협의 및 통보도 없이 무작정 묘를 없애고 시에 재차 향토유적을 해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여주시는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 없이 내버려두고 있었다. 후손들의 향토유적 훼손에 대한 조치, 향토유적 철회 등에 대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나 몰라라’하고 있는 것이다. 향토유적은 여주시와 시 향토유적보호위원회 등이 향토 문화재로서 보존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유적을 지정한다. 향토문화ㆍ토속ㆍ풍속을 연구하는 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여주시 향토유적 보호 조례에 따르면 향토유적은 원형이 변경되지 않도록 보존ㆍ관리해야 하며 시는 연 2회(3월ㆍ9월), 읍면동은 연 4회(2월ㆍ6월ㆍ8월ㆍ10월) 점검 및 보존관리에 필요한 사항 조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주시 관계자는 “2년간 사라진 묘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시인하면서 “향토유적은 문화재가 아니라 법적 고발 조치가 불가능해 어쩔 수 없었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향토유적보호위원회에 자문을 받아 ‘박준원 묘ㆍ신도비’에서 묘를 빼는 등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류진동ㆍ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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