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앞에 두고도 못쓰는… 무늬만 ‘병원 구급차’

개원 의무 불구 대형병원 “유지비 부담” 대다수 사설 구급차 위탁
병원協 “접근성·효율성 높은 이송 위해 구급차 의무화 개선돼야”

경기도 내 종합병원들이 갖추고 있는 구급차 중 대다수가 사용실적이 거의 없이 ‘애물단지’로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병원 개업 시 의무적으로 구급차를 두도록 돼 있지만, 병원들은 ‘비싼 유지비용’을 이유로 병원 구급차를 쓰지 않고 사설 구급차 업체에 위탁 운영하고 있어서다. 더구나 병원 간 응급환자 이송 시에도 병원 소유 구급차를 못 쓰는 사례가 늘면서 ‘무용지물’ 구급차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2일 경기지역 의료계에 따르면 대학병원을 비롯한 도내 모든 병원급 의료기관은 기관 개설 조건으로 구급차를 무조건 구비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과해진다.

그러나 병원 소유 구급차의 사용실적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5년에 개원한 고양시의 한 대학병원은 개원과 동시에 구급차를 구입했지만, 사실상 대학교 행사 등에만 사용할 뿐 환자 수송에는 거의 사용한 적이 없다. 이 병원은 모든 환자 수송은 계약을 맺은 사설 구급차 업체에서 담당하고 있다. 안양의 한 종합병원 역시 법적 의무사항으로 지난 2016년 수천만 원을 들여 구급차 1대를 구매했지만, 한 달에 수백만 원씩 위탁 업체에 돈을 주고 환자를 수송하고 있다.

이처럼 병원 소유 구급차가 ‘장식품’으로 전락한 이유는 ‘유지비용’ 때문이다. 구급차 1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건비와 구급차 안에 들어가는 물품 관리 비용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사설 업체에 맡기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것이다.

고양의 대학병원 관계자는 “24시간 구급차 운영을 위해선 인력 여럿이 필요한데 병원 사정이 만만치 않다”며 “보건소에서 1년에 한 번 구급차 물품 등 정비를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이어 “병원 입장에선 사용하지도 않는 구급차를 없애고 싶은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에선 이 같은 ‘무용지물’ 구급차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늘고 있다. 응급 상황 시 병원 바로 앞 구급차를 두고도 사설 구급차를 기다려야 해 생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병원 측도 애물단지 구급차를 차라리 없애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3월 구급차 구비 의무화 병원의 대상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119구급 서비스, 129 민간구급차 이용서비스 등 접근성과 효율성이 높은 이송서비스가 대중화된 만큼 병원 내 구급차 의무화 제도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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