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태풍이 몰아쳐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과 사나운 풍랑으로 덮여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그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집에 있던 어부의 아내는 노심초사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을 걱정하던 아내가 잠시 밖에 나간 사이에 그때 혼자 집에 있던 아이가 촛불을 넘어뜨려 집안에 화재가 발생했다. 놀란 아내는 불이 난 집안에서 아이를 겨우 건져내어 집 밖으로 나왔다. 이튿날 아침, 남편이 탄 배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이마에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어젯밤 풍랑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해 죽게 되었을 때 갑자기 육지에서 불빛을 보았다. 그 불빛을 보고 겨우 방향을 잡아서 육지로 향할 수 있었노라고 말했다.” 집이 불에 탔지만, 그것으로 남편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눈앞에 현상만 보고 우리는 너무 쉽게 낙심하지만, 우리의 그 낙심이 오히려 감사의 경우가 될 때가 잦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7장에는 나병환자 열 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환자들은 인생에서 감사할 수 없는 조건들이었다. 나병이란 당시에 저주받은 삶의 대표적인 병이었다. 당시에 나병환자들은 무리를 지어 다녔고 그들은 곧 사회의 골치 아픈 대상자들이며 반사회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병을 고침 받았다. 그런데 열 명이 고침을 받았지만 아홉 명은 자신의 갈 길을 같고 병 나은 환자 한 사람만 예수님을 찾아와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구원을 얻었다. 나머지 아홉 명은 육체의 병만 고침을 받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영혼구원은 받지 못했다. 그들에겐 참 감사가 없었던 것이다. 참된 감사는 그 감사의 기회를 주신 분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랍비에게 가서 불평했다. “선생님! 삶이 너무 힘듭니다. 방 하나에 우리는 아홉 명이나 살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랍비가 대답했다. “염소를 방 안에 들여놓고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내게.” 그 사람이 의아해하자 랍비가 명령했다. “내가 말한 대로 하고 일주일 후에 오게.” 일주일 후에 그가 전보다 더욱 정신 나간 상태에서 와서 말했다. “선생님!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염소가 너무 지저분합니다.” 그때 랍비가 말했다. “이제 집에 가서 그 염소를 내보내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오게.” 일주일 후에 그가 돌아와 빛난 얼굴로 랍비에게 말했다. “선생님! 삶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매 순간이 즐겁습니다. 염소가 없고 우리 아홉 명만 있으니 정말 행복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감사할 것에 대해 감사하면 반드시 참된 축복이 돌아온다. ‘감사의 문’이 열리면 ‘축복과 행복의 문’도 열리지만 ‘감사의 문’이 닫히면 모든 문도 닫히는 것이다. 감사를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종교개척자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감사의 계절 11월에 아름다운 단풍의 물결을 보면서 대한민국에 감사의 열매들이 풍성하길 기도해 본다. 이 땅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고백들이 충만해 지길 소망해 본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 이슬람선교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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