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국민은 호랑이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국회의원 9선으로 최다선 기록을 세웠지만 10선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역사에 남기려는 욕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비례대표 1번으로 등록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 주었던 충청권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충청도 유권자들은 ‘영원한 2인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국무총리를 두 번이나 역임한 JP를 외면했고, 단 4명의 당선자를 냄으로써 비례대표 1번까지도 낙선(落選)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큰 충격을 받은 JP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말과 함께 ‘국민은 호랑이’라는 말을 남겼다.

9선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정치 10단’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끝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리고 국민을 무시했다가 그 결과가 얼마나 무참히 무너지는 것인지를 그는 깨달은 것이다. 결국,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조용히 살다가 지난해 여름 92세를 일기로 운명하였다. 더욱더 일찍 정계은퇴를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래도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든지 ‘국민은 호랑이’라고 말을 했을까?

요즘 우리 정치판에 ‘불출마’가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여권에서는 임종석 前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야권에서는 3선의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임종석 前 비서실장은 이른바 586세대와 친문(親文) 핵심 세력을 대표해 왔는데, 의외로 불출마 선언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체로 민주당의 주류를 이루어왔던 586세대를 필두로 인적쇄신의 의견이 탄력을 받고 있고 이에 따라 3~4선 의원들이 퇴진압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10여 명의 의원이 불출마 여부를 고민한다는 보도도 있다. 물론 같은 586세대 중에서도 ‘남아서 일 할 사람은 일하고…’하며 반발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충격적인 불출마선언은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의 경우이다. 김 의원이 ‘자유한국당의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라고 한 것은 가히 폭탄선언이다. 그러면서 그는 황교안 당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까지도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와 같은 호재 속에서도 당의 지지율을 높이지 못한 것은 당을 이끄는 지도층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이대로는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어렵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이에 대해 찬ㆍ반 양론으로 갈라지는 현상을 보이고 황교안 당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하면 물러날 각오’라고 했다. 이를 두고 ‘당장 선거 결과가 나쁘면 책임을 지는 게 당대표인데 뻔한 소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러자 황 대표는 돌연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이 추위 속에 죽기를 각오하고 ‘공수처 설치와 선거법 개정’ 등을 막겠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당(黨) 쇄신의 목소리는 황 대표의 단식투쟁 모드에 묻힐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해서 공수처 설치, 선거법 개정 저지에 성과를 올린다면 황 대표의 리더십도 살고, 자유한국당도 힘을 받게 될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모처럼 3선 의원의 자기 희생적 불출마선언과 당 쇄신에 대한 간언(諫言)이 준 감동이 사그라지는 것은 아닐까?

국민이 바라는 것은 여ㆍ야 정치행태에 신선한 바람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애써 국민의 바람을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정치게임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JP가 뒤늦게 깨우쳤던 ‘국민은 호랑이’라는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후회할 때는 늦을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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