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왕초보’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니 뒤에 오는 운전자는 조심하라는 뜻으로 자동차 뒤에 스티커를 붙여 놓은 차를 흔히 본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하고 아기 그림을 그려 넣은 스티커도 있다. 아이가 타고 있으니 경적을 울리지 말고 추돌사고가 없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면허 딴 지 한 달 됐어요.’ ‘양보해 줘서 고마워요.’ 등등 애교 넘치는 것도 많이 있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 끔찍한(?) 경고의 스티커를 보고 섬뜩했다.
‘나도 내가 무서워요.’ 무슨 뜻일까? 그 자동차 뒤를 따라가며 생각해 보았다. ‘나는 초보운전이라 어떤 돌발 상황을 일으킬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뜻일까?’ 그럴 것이다. 다분히 협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내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알아서 조심해라.’
사실 도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교통사고는 처음부터 마음먹고 일으키는 것은 거의 없다. 한순간에 앞의 차를 추돌하여 엉뚱하게도 목숨을 잃거나 상해를 입히기도 하고 괜찮겠지 하고 끼어들기를 하다가 대형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인공지능(AI) 로봇이 운전하는 이른바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운행하기 때문에 추돌사고나 횡단보도의 사람을 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AI 로봇 택시가 등장할 판인데 택시 기다리는 사람 앞에 스스로 찾아가 목적지에 무사히 내려 준다. 물론 AI 로봇 운전은 아직 시험 중인데 곧 현실화될 전망이다.
지난 6일 동국대학교에서 ‘AI 로봇 정치’ 강연이 있어 흥미를 끌었다. AI 로봇 ‘나오’(NAO)가 동국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인공지능 사회에서 정치는 AI의 몫인가, 여전히 인간의 역할인가?’라는 주제도 강연했는데 결론적으로 “AI도 정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
언론 보도에 의하면 AI가 정치하면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는 등 국민의 합리적 요구에 합당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드디어 자율자동차, 산업용 로봇…. 그리고 정치에까지 AI가 등장하는 것일까? 그러면 국회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일도 없을 것이고 모든 법률안은 AI가 척척 처리해 줄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와 같은 국민을 실망시킬 일은 물론 허위 인턴십이니, 논문표절 같은 시비도 없을 것이다. 시장 선거에서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하명수사’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법을 어겼으면 처벌을 받아야지 ‘감찰 무마’ 같은 것도 AI에게 절대 통하지 않을 것. AI는 가족도 없고 학교 동창도 없으며 모든 계파와 측근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정치도 문제가 있다. 컴퓨터망을 뚫는 ‘해킹’이 있듯이 AI 전문가가 엉뚱한 조작을 해놓으면 정말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가령 어떤 법률을 만들 때 자기 조직, 자기 정당에 유리한 조문을 삽입하도록 AI를 조작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외국 은행을 해킹하여 손도 안 대고 수 많은 달러를 도둑질하지 않는가? 더 큰 문제는 어떻게 AI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정치는 그것이 아무리 시끄럽고 부정직해도 인간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역시 인간이 문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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