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이상 거주 외국인 ‘건강보험 의무가입’ 제도 도입 이후
소득 낮은데 보험료 최대 수십배 올라… 연체땐 강제출국 위기
“소득·거주형태 실태조사 없이 시행… 제도 개선” 촉구 목소리
안산, 평택 등 도내 거주하는 고려인들이 ‘외국인 건강보험 의무가입’ 제도 도입 후 ‘건보료 폭탄’으로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8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직장가입자가 아닌 외국인은 건강보험 가입 의무가 없었지만 올해 7월, 건강보험 의무가입 제도 시행으로 6개월 이상 국내에 머무는 외국인은 모두 건강보험에 가입해 최소 월 11만 원 가량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이로 인해 고려인 동포들, 특히 소득수준이 낮은 고려인들은 건강보험료가 적게는 서너 배 많게는 수십 배 오른 데다, 연체 시 체류 연장에 대한 불이익(6개월 연체시)이 발생해 강제출국의 인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지역가입자 세대원 인정 범위가 한국 국적자와 달리 세대(주민등록표상 함께 거주하는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가입자 배우자와 만 19살 미만 자녀만 건보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됐다. 이에 따라 고려인은 나이 든 부모, 장애나 질병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자녀조차 각각 독립된 세대로 세대 당 평균보험료 이상 부과하고 있어 고려인 가정에 여러 개의 보험료 고지서가 부과되는 사례도 있다.
실제 우즈베키스탄 국적 고려인 동포 A씨(20)의 경우 뇌경색을 앓고 있는 어머니, 노령의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직장건강보험에 가입이 안 되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했던 A씨는 올해부터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 세대로 등록할 수 없게 돼 세 명의 가족 각각에게 11만3천50원이 부과된 3개의 건강보험료 고지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같이 한국에 장기체류 및 정착을 희망하는 고려인 동포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에 대해 고려인들과 관련 단체 및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회보험료 징수를 확대하면서 체류 자격별 가계소득이나 거주형태 등에 대한 실태조사 한번 하지 않고 제도를 도입ㆍ시행하면서 또다른 ‘차별’을 낳고 있다고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고려인지원센터 사단법인 ‘너머’ 관계자는 “고려인의 경우 동반자녀 비자(F1), 자녀의 돌봄을 위해 조부모(F4) 입국이 증가하고 있고, 일용직 노동 등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건강보험 의무가입이 체류 자체를 위협하는 폭탄이 되고 있다”며 “경제활동이 불가능함이 입증되는 경우 내국인과 동일한 최소보험료 적용하고 소득파악이 부정확한 경우에도 고령이나 장애 정도 등을 참작해 건보료를 산정하는 등의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고려인 동포에게 재외동포나 다른 외국인과 기준을 달리 적용할 경우 외국인과의 차별 논란 등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으므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고려인은 옛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독립국가연합 전체(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등)에 거주하는 한민족으로, 약 50만 명 고려인 동포 중 현재 국내 거소 등록된 고려인 동포는 8만여 명 이상이 체류하고 있으며 특히 안산 등에 1만6천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강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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