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선수가 게임룰을 바꾸는 ‘꼴불견’

이호준 정치부 차장 hojun@kyeonggi.com
기자페이지

지난 17일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면서 2020년 4월 15일 치러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서막이 막 올랐다.

이번에도 역시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 자신이 정확히 어디로 출마할지도 모른 채 후보자들이 일단 등록부터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국회 내부 사정은 더 어지럽다. 한국당을 제외한 정당들은 국민이 듣도 보도 못한 ‘4+1’, ‘3+1’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협의체를 구성해 연일 선거법 개정을 놓고 다툼 중이다. 이들은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하려 하지를 않나, 최근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연동형 캡’ 등을 놓고 씨름하고 있다. 정치부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보니 많은 질문을 받는다. 연동형이 뭐냐? 석패율제는 뭐냐?… 정치부 기자조차 하나하나 설명하기 어려운데, 정치권과 상관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 ‘4+1’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협의체에 포함된 정당 이름을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도대체 국회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최근 국회의 행보를 보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들이 모여 자신들이 출마할 선거 룰을 바꾸는 게 맞는 것인지 말이다. 선거제도는 법을 바꿔야 하고, 법을 의결하는 권한은 국회에 있으니 국회의원들이 선거법을 바꾸는 게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자. 야구선수들이 매 시즌 앞두고 모여 룰을 바꾼다면?! 홈런타자들은 펜스를 앞으로 당기자고 주장할 것이고, 투수들은 공을 더 작게 만들자고 주장할 것이고… 합의가 되겠는가?! 또 그것을 지켜보는 야구팬들은 얼마나 꼴사납게 쳐다보겠는가. 지금 국회가 하고 있는 논의가 이것과 뭐가 다른가.

제안하고 싶다. 시민단체와 학계, 정계가 모여 선거제도를 논의하는 기구를 만들고, 그곳에서 의결되는 안을 국회가 무조건 받아 의결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자. 적어도 국회의원들이 자기 밥그릇 지키려 싸움하는 꼴은 안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국회의장 아들은 아버지 지역구에 출마한다고 하질 않나, 지역구 선거에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여보내자고 하질 않나, 제1야당은 무슨 이유로 언제부터 인지도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거리 정치만 하고 있질 않나…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게 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이호준 정치부 차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