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겪은 참상 직접 보니… 참담하고 괴로워”

‘파주 두포리 학살사건’ 영상 공개… 피해자 자녀 김금자씨 인터뷰
“아버지는 반공투사 아니야 금전적인 보상은 바라지 않아 무고한 피해자 잊히지 않길”
본보 보도 후 관련자 문의 쇄도

▲ 625 전쟁 중 인민군이 저지른 ‘파주 두포리 학살사건’에 대한 영상자료가 최초로 공개된 가운데(본보 23일자 1면) 김현국 파주아카이브 자료연구가와 유가족인 김금자씨(희생자 김윤배씨 딸), 파주시재향군인회 이사중 회장, 조주희 사무국장이 23일 학살현장을 찾아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전형민기자
▲ 625 전쟁 중 인민군이 저지른 ‘파주 두포리 학살사건’에 대한 영상자료가 최초로 공개된 가운데(본보 23일자 1면) 김현국 파주아카이브 자료연구가와 유가족인 김금자씨(희생자 김윤배씨 딸), 파주시재향군인회 이사중 회장, 조주희 사무국장이 23일 학살현장을 찾아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전형민기자

“쾅!” 1950년 10월2일. 무쇠 솥이 깨지는 소리가 나자 인음전씨(당시 36세)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부엌으로 나왔다. 인씨는 멀쩡한 솥을 보며 어째서인지 다행인 마음보다 걱정이 앞섰다. 순간 몇 주 전 친한 동생 김씨의 밀고로 인민군 감옥에 갇힌 남편이 생각난 것.

몇 주 전 인씨의 집에 찾아온 김씨는 할 말이 있다며 남편 김윤배씨(당시 42세)를 불렀다. “가지마 아빠!”, “우리 딸 착하지? 아빠 금방 갔다 올게.” 세 돌도 지나지 않은 막내딸이 남편에게 가지 말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인씨는 불안함이 감돌았지만, 그저 딸의 어리광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딸과 남편의 마지막 대화였다.

인씨는 ‘반공’을 이유로 감옥에 갇힌 남편의 면회를 갈 때마다 오른쪽 어깨에 큰 딸 이름 ‘김찬숙’을 새긴 윗도리를 사식과 함께 보냈다. 많은 사람의 옷 사이에서 본인 것을 쉽게 찾으라는 배려였다.

무쇠 솥 깨지는 소리가 나고 며칠이 흘렀을까. 인씨에게 한 사람이 소식을 전해왔다. 남편 김윤배씨의 사망 소식이었다. 인씨는 파주 두포리 임진강 전진대교 옆 산 중턱에 널려 있는 수백 개 시신들 가운데 남편을 찾기 시작했다. 가을답지 않은 온화한 날씨 탓에 부패한 시신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한 시신의 옷자락에서 익숙한 자수를 발견했다. ‘김찬숙.’ 바로 큰딸의 이름이었다.

인씨는 가묘(假墓)를 만들어 남편을 묻었다. 묘 앞에 큰 돌도 두었다. 나중에 남편의 묘를 찾기 위한 일종의 표시였다. 그 후 인씨는 딸 다섯을 데리고 피난길을 떠났다. 몇 달이 흐르고 인씨가 다시 파주에 돌아왔을 때, 남편 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저지른 대표적인 학살지 중 한 곳인 파주 파평면에서 벌어진 ‘두포리 학살사건’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영상자료가 69년 만에 처음으로 발굴(본보 23일자 1면), 본보가 단독 공개하자 이를 본 유족들은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 사건 피해자 김윤배씨와 인음전씨의 막내딸 김금자씨(72)는 매년 이곳 두포리에 있는 반공투사 위령비를 찾아 아버지 김윤배씨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23일 김현국 파주아카이브자료연구가와 유족인 김금자씨(故 김윤배씨 딸), 이사중 파주시재향군인회장, 조주희 파주재향군인회 사무국장이 1950년 한국전쟁 중 북한인민군이 납치한 반공인사와 마을주민을 무차별 총격을 가해 학살한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 임진강 전진대교 옆 산 중턱에 세워진 6.25 반공투사 위령비를 살펴보고 있다. .전형민기자
23일 김현국 파주아카이브자료연구가와 유족인 김금자씨(故 김윤배씨 딸), 이사중 파주시재향군인회장, 조주희 파주재향군인회 사무국장이 1950년 한국전쟁 중 북한인민군이 납치한 반공인사와 마을주민을 무차별 총격을 가해 학살한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 임진강 전진대교 옆 산 중턱에 세워진 6.25 반공투사 위령비를 살펴보고 있다. 전형민기자

김금자씨는 “어머니에게 전해들었던 아버지 일을 이번 기회에 직접 영상으로 확인하니 ‘아버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어머니는 또 얼마나 참담했을까’하는 괴로운 심정이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아버지는 반공투사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대한청년단원이었을 뿐”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두포리 학살사건은 지난 1950년 10월2일 유엔군의 서울 수복 이후 북으로 퇴각하던 인민군들이 끌고 가던 대한청년단원, 공무원, 경찰 등 우익인사들을 파주 임진강 전진대교 인근 산 중턱에서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수백 명의 민간인이 무참하게 살해됐다고 기록돼 있다.

애초 이 사건에 대한 목격자들과 유가족 증언이 담긴 구술자료 외에는 영상, 사진자료 등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김현국 파주아카이브자료연구가 겸 향토연구가가 최근 이 사건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당시 영상필름 기록을 발굴, 본보에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영상 공개 후 유족 등 피해자 관련자들로부터 영상에 대한 문의전화도 쇄도하고 있다.

유족 김금자씨는 “금전적인 보상은 바라지 않는다”며 “이번 영상 공개를 시작으로 ‘두포리 학살사건’이 널리 알려져 아버지를 비롯한 무고한 피해자들이 잊혀지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요섭ㆍ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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