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 뺀 ‘남북 협력’만 강조한 신년사 / 남북 경협 기업이 눈치 채고 외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 신년사를 했다. 변함없이 남북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협력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접경 지역 협력,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동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와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북한 참가, 도쿄 올림픽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 협의, 남북 간 철도ㆍ도로 연결, 비무장지대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 등이다. “국제적인 해결이 필요하지만 남과 북 사이의 협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고도 밝혔다.

남북 관계에 대한 변치 않는 의지다. 더 강력해진 메시지로 해석되는 부분도 있다. ‘북미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가겠다’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다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열거된 ‘협력할 수 있는 일들’ 대부분은 비(非)경제 분야다. 체육 문화 분야가 골자를 이룬다. ‘경제’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은 것도 주목된다. 남북 관계를 언급한 2천여 글자 가운데 ‘경제’라는 단어는 딱 한 번 나온다. 미래 목표를 설명할 때다.

신년사 직후 통일부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교류협력국’을 ‘교류협력실’로 확대ㆍ승격하는 개편이다. 대통령 신년사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비무장지대의 국제평화지대화 및 접경지역 협력 등에 대한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준비로는 맞다. 대통령 신년사에 대한 추동력을 확보하고, 신뢰를 보여준다는 정책적 호흡일 수도 있다. 그런데 경제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형식적인 환영의 논평과는 달리 내면의 실망감이 역력했다.

특히 당사자 격인 개성공단기업협회가 싸늘했다. 공식 논평을 통해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공단 재개의 구체적 실천 방안을 고대했던 우리에게는 너무 막연하다”고 지적했다. 실망감은 시장(市場)에도 여실히 나타났다. 남북경협주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주식이 무덤덤했다. 철도ㆍ도로 분야 관련주로 평가되는 일부 주식만이 잠시 상승했을 뿐이다. 대통령의 남북 경협 발언 때마다 요동치던 지난 두 번의 신년사 때와 전혀 다른 반응이다.

적절치 않은 신년사였다. 지금 국제 정세가 어떤가. 북한은 연일 군사력 협박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연일 북한의 오판을 경고하고 있다. 나라 밖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일촉즉발이다. 이런 시기에 나온 새해 선언이다. 예년과 달랐어야 하지 않나 싶다. 현실적인 선언과 실천 가능한 구상이 제시됐었어야 하지 않나 싶다. 2020 신년사의 대북 관련 부분은 나약했고 솔직하지도 못했다. 공연히 대통령의 말(言)이 갖는 권위와 신뢰만 잃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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