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 이건희 회장은 베이징에서 가진 한국 언론사 특파원들과의 대화에서 “한국 정치는 4류, 관료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폭탄 발언을 날렸다. 규제 혁신에 미진한 당시 정치권을 직격한 것이다. 이 발언은 YS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고, 삼성은 적지 않은 후폭풍을 감내해야 했다. 25년이 지났다. 정치, 행정, 기업은 얼마나 바뀌었나.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우리 기업들은 세계 1류로 성장했다. 행정은 정치에 예속돼 있으나 그래도 2류 정도 점수를 줄 수 있다. 문제는 정치다. 4류는커녕 랭킹을 매기기도 어렵다. 국민에게 분노와 피로를 안겨주고 국가경쟁력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경제는 버려지고 잊힌 자식”이란 말까지 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절규다. 문 대통령은 작년 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생산 현장을 잇따라 방문하기도 했으나 대통령의 행보와 달리 기업을 규제하는 정책·제도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비상등은 새삼스러운 사태가 아니지만, 이제는 정말 최악의 상황과 직면했다. 정부는 2020년 경제성장률 2% 달성을 외치나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조업의 붕괴와 수출, 투자 모두 침체기에 들어섰다. 소비자 심리지수, 디플레이션, 구매관리자지수, 재정건전성, 국제신용평가 등 모든 지표가 최악이다.
정의, 평등을 아무리 떠들어도 모든 문제의 단초와 해결은 경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클린턴의 선거 구호인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가 떠오른다. 지금 정권은 4·15 총선에만 골몰할 뿐 국가 미래와 공동체 분열은 안중에도 없다. 뭐든 밀어붙여도 된다는 과신과 욕심뿐이다. 야당은 지리멸렬하고 자유민주주의 세력은 민중궐기 방식으로 조직화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에 자신만만이다. 누더기 선거법 개정, 공수처 설치, 울산시장 선거 개입, 민정수석실의 감찰 무마 등등 이런 일들이 과거 정권에서 일어났다면 민노총과 전교조, 수백 개 단체들이 연일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정권퇴진을 외쳤을 것이다. 윤석열 총장의 수족을 자르고 숨통을 조이면 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언제까지 검찰이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한다. 검찰이 무릎을 꿇는 순간 현 정권의 전횡을 막기는 어렵다.
추운 날씨에도 광화문을 비롯해 광장과 거리에서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무능한 정치권을 성토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정치와 정치인에게 기대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민주주의는 독재자가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 국민에게 남은 것은 투표뿐이다. 엉터리 선거법에도 똑바로 찍어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고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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