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1년에 출간된 최인훈의 <광장>은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개인이 이념 전쟁으로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이념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린 최초의 소설로 평가받는다. 소설 내에서 ‘광장’은 사회적 삶의 공간을 의미하며 ‘밀실’과 대비된다. 즉, 대한민국 근현대사 그 자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그런 의미를 반영한 전시 <광장>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지난 100년 간의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담아 오는 3월29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한국미술 100년을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 유일 국립미술관으로서 지난 100년 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한국미술과 미술관이 나아갈 미래를 국민과 함께 그려본다는 취지로 진행되는만큼 한국미술 100년을 대표하는 회화, 조각, 설치 등 450여 점의 작품을 시대별로 1~3부로 나눠 구성한다.
과천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1950년대부터 현대를 통사적으로 바라보며 예술이 삶과 함께하는 의미를 담은 2부 전시다.
2부 전시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빌려 온 ‘검은, 해’, ‘한길’, ‘회색 동굴’, ‘시린 불꽃’, ‘푸른 사막’, ‘가뭄 빛 바다’, ‘하얀 새’ 등 총 7개 주제로 구성됐다. 소장품을 중심으로 각 시대별 주요 작품들과 디자인, 공예 및 생활 오브제들이 함께 선보이며 역사와 이념, 시대를 넘어 개인과 공동체를 포괄하는 공간으로 제시된다. 특히 문학, 음악, 연극 등 분야별 전문가들과 협업한 자료 발굴을 통해 한국미술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준다. 변월룡,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박서보, 신학철, 서도호, 이불,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등 작가 200여 명의 작품 300여 점과 자료 200여 점을 선보인다.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와 작품에 영감을 준 달항아리와 청자매병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어 동백림사건으로 수감된 윤이상과 이응노가 각각 옥중에서 작곡한 <이마주(image)>(1968) 육필 악보와 그림 <구성>(1968)이 함께 전시된다. 또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1980년대 오윤의 걸개그림 3점이 최초 공개된다. 1980년대 광장의 거리를 재현한 중앙홀에는 최병수 외 학생ㆍ시민ㆍ화가 35인이 그린 대형 걸개그림 <노동해방도>(1989),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1987) 등을 선보여 당시 시위가 진행되었던 공간을 작품으로 재해석해 구성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번 전시는 20세기 여명부터 현재까지 ‘광장’을 뜨겁게 달군 한국 근현대사와 미술을 조명하는 기념비적인 전시”라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국내외 대중과 미술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확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1부 전시와 3부 전시는 각각 덕수궁관과 서울관에서 다음달 9일까지 열린다.
권오탁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