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고기인 가시고기 수컷은 부성애(父性愛)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수컷 가시고기는 혼자서 열심히 수초를 물어다 좋은 장소를 찾아 집을 짓는다. 그러고는 암컷을 맞아들여 산란을 한다. 산란을 끝낸 암컷은 사라지고 수컷이 남아 알을 지키며 부화를 위해 정성을 쏟는다. 물속에 신선한 산소를 확보하고자 꼬리 지느러미를 쉬지 않고 휘저으며 알 주위를 맴돈다. 그렇게 하여 10여 일쯤 알에서 새끼가 나올 때면 아버지 수컷은 지쳐서 죽고 만다. 알에서 부화하여 나온 새끼들은 죽은 아버지 몸뚱아리 살을 먹으며 성장을 한다. 참으로 기막힌 수컷 가시고기의 일생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더 감동적이다. 그러나 종족 번식의 생물학적 본능이 강한 남성에게는 특별한 ‘부성애’가 발동 되기도 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는 아들이 없었는데 당시 국회의장이던 이기붕 장남 이강석 육군 소위가 양자로 입적했다. 아들의 확실한 출세가도를 확보하고 아들을 그렇게 입양시킴으로써 자신도 차기 대권에 대한 튼튼한 보증을 세운 셈이다.
그러나 그 야심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3ㆍ15 부정선거로 4ㆍ19혁명이 발생한 것이다. 분노한 학생들이 서대문에 있던 이기붕 의장의 집을 급습했고 이 의장과 가족들은 몸을 숨겼다. 4월28일에는 이강석이 권총으로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을 죽이고 자신도 이마에 총을 쏴 자살했다. 참으로 참담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만약 이기붕 의장이 대권 세습의 탐욕을 버리고 아들을 권력의 제물로 바치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3ㆍ15 부정선거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죽음을 낳는 것이란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의 개신교를 대표하는 모 교회도 세습의 논쟁에 휩싸여 있다. 존경받아오던 김모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 목사직을 물려 주는 데서 발생한 소요다. ‘세습’이라며 아들의 승계를 반대하는 측과 세습이 아니라 합법적임을 주장하는 측과 싸움이 벌어진 것. 사실 세습은 그것이 합법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법이라는 것이 (교회의 법까지도) 때로는 피해 나갈 통로가 있다. 가령 ‘~할 수 있다’ 는 조항은 ‘~아니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세습을 찬성할 사람들로 대의원을 지명하게 한 후 거기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어 통과되면 그건 합법이다. 그러나 합법이라고 정의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양심적이라 말할 수도 없다. 북한의 김정은이 3대 세습인데 형식은 당 대표자들이 모여 100% 찬성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다. 이 기막힌 세습을 누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세습이 박수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조직을 화석화시키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보편적 절차로 선출된 후계자가 비록 세습에 의해 승계된 자보다 능력이 뒤떨어진다 해도 그는 도덕적 힘을 받기 때문에 조직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그러나 세습에 의한 조직은 교회건 정치건 공의롭고 정당성 있는 절차를 상실했기 때문에 화석이 된다.
그래서 인류가 발명해 낸 최고 최선의 제도가 비록 갈등과 비용이 많더라도 ‘민주주의’인 것이다.
선거철이 되자 또 세습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일, 목포는 누가, 대구는 누가… 하는 식으로 지역을 세습처럼 떠드는 일… 토건업자들이 공사입찰 때 오줌만 먼저 누어도 연고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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