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창 인기를 누릴 때 유행했던 말이 있다. “두 유 노우 싸이?(Do you know PSY)?” 외국에서 내한하는 유명 스타들에게 질문하는 우리나라 기자, 외국으로 여행 가서 그곳 외국인에게 질문하는 한국인,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했다. 한국인의 ‘두 유 노우’로 시작한 질문의 역사(?)는 좀 오래됐다. “두 유 노우 코리아?”부터 시작해서 “두 유 노우 김치?” “두 유 노우 비빔밥?”, “두 유 노우 세리 팍?”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이제 그런 객관적 인정을 구걸하는 것 같은 촌스럽고 민망한 질문을 그만 하면 안 될까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세계를 흔들어놓으며 폭발적 인기를 얻은 BTS와 칸 영화제, 골든 글로브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이 ‘두 유 노우’는 좀 졸업하지 않을까 한다. 이제 그런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 스스로 문화적 자존감은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인을 향해 “BTS는 말이야...”, “아직 ‘팰러자잇’을 안 봤단 말이야?” 그렇게 되어가는 중이다.
영화도 영화지만 봉준호 감독이 유럽, 북미 등지를 돌면서 상이란 상은 다 휩쓸며 시상식 전후 보여주는 수많은 인터뷰가 압권이다. 영화산업의 본고장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 유머와 재치가 가득한 인터뷰를 자기 스타일로 펼치는 한국 감독의 모습을 시차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꽤 감동적이다. 글을 잘 써도 말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영화적 언어에 능해도 실제 인터뷰엔 서툴 수 있는데, 이미 질문을 알고 대답하는 사람처럼 유연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답할 땐 영화 <기생충>과는 별도로 이런 대단한 감독의 인터뷰를 자막 없이 보는 한국인들의 자부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영어 인터뷰에 능숙했던 가수 싸이의 인터뷰나, 영화 <기생충>의 영어자막, 그리고 이 팀의 북미 영화제 시상식 투어에 놀라운 통역 실력으로 큰 주목을 받은 ‘샤론 최’를 보면 글로벌 언어로 소통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지만,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는 BTS의 세계적 인기를 생각하면 문화는 언어를 뛰어넘는 매력적인 킬러 콘텐츠가 핵심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세계에 통한다는 것을 확인할 때 문화예술 콘텐츠 생산자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은 크게 높아져 그들의 수많은 인터뷰 또한 점점 볼만해져서 즐겁다. 영어 아닌 우리말로 답변하는 태도도 즐거움은 숨기지 않지만 주눅이 들지 않으며, 그 내용은 한국 안에 머물러 있지 않다.
BTS는 2019년을 지나오면서 나날이 세계적인 미디어 앞에서도 슈퍼스타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따로 미디어 앞에서 보여줄 모습을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세계 팬들과 소통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기꺼이 즐기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여유와 즐거움, 자신감이 잘 드러난다. BTS의 팬은 아니지만, 데뷔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그들 음악이나 퍼포먼스를 듣고 봐왔다는 한 대학생은 슈퍼스타가 되어도 한 치도 무너지지 않은 퍼포먼스의 ‘각’만큼은 손뼉쳐주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즐거운 여유와 세련된 자신감은 엄청난 노력으로 쌓인 내공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국내 이런저런 시상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배우 황정민의 ‘나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들었다’는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된 이후, 의미 있고 느낌 있는 수상 소감을 하는 스타들이 많아졌다. 주위의 도와준 사람들 이름만 줄줄 말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이름을 빠뜨릴까 조금 긴장하는 과거의 뻔하고 식상한 수상 소감에서 탈피했다. 문화적 자산과 대중 영향력이 커지면서 우리 문화예술계도 성장하는 모습이다. 곧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기생충의 수상 결과도 궁금하지만, 영화계 스타들의 의식 있고 멋진 수상 소감은 준비된 말이든, 즉흥적인 말이든 즐거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말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먹고 자란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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