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연출가, 희화 풍자의 달인, 현실의 날카로운 포착자. 모두 연극 연출가 박근형을 칭하는 말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1호라는 타이틀(?)을 단 것도 그의 이러한 예리함 때문일 테다. 수많은 희곡상을 휩쓸며 연극계를 뜨겁게 달궜던 그가 경기도립극단과 손잡아 현시대의 날카롭고 불편한 문제의식을 되짚는다. 지난 2012년 <화성인, 이옥>이후 8년 만이다. 작품은 <브라보, 엄사장(박근형 작ㆍ연출)>. 2005년 <선착장에서>를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선보인 ‘엄사장’ 시리즈의 캐릭터와 장소, 등장인물, 배경은 같지만 지금, 2020년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담았다.
25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경기도립극단 배우들의 앙상블과 팀워크가 매우 좋다. 외부인인 내가 손님이 아니라 식구 같은 기분이 들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 재밌게 작업하고 있다”면서 “폐쇄된 섬에서 사는 사람들의 에피소드와 편견, 미투와 관련된 내용 등을 색다르게 담았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 관전 포인트는 배우들의 경북 사투리다. 그의 작품에서 사투리는 활력소와도 같다. 박 연출은 “경상도 연극을 꽤 많이 했는데, 경상도 사투리는 극이 느슨하거나 뻔할 것 같을 때에도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마법 같다”며 “이번에는 경북 사투리의 그러한 효과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경북 말의 담백하면서도 글자 수를 확 줄이는 생략법, 무뚝뚝한 말 맛이 대사로 옮겨진다. 박 연출가는 “박현숙 배우와 주인공 김길찬 배우는 최고급 수준으로 사투리를 구사해 놀랐다. 말을 가지고 노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이 재미”라고 귀띔했다. 또 하나, 극의 배경이 되는 호수다방에서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창밖의 사람들을 보면서 조롱하고 야유하는 장면 역시 주요 관전 포인트다. 여기서 창밖은 관객이다. 관객을 향해 어떤 것을 조롱하고 야유할지, 또 이게 인간의 어떤 부끄러운 내면을 드러내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가 연극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 우리, 여기’다. 이번 <브라보, 엄사장>에서도 관객과 함께 사는 동시대 이야기를 작품 속에 넣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나오는 것도 작은 사례다. 그는 “성과 관련된 부분은 ‘미투’를 주제로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인간의 비열함에 대해 들여다보고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사실 연극계에서 처음 터져 나온 게 미투인 만큼, 이 부분은 연극계에서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다. 그는 “외부사람들이 볼 땐 연극계의 이러한 문제가 수면 아래 잠잠한 것 같아도, 아직 여러 문제와 관련해서 연극계가 변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다”며 “젊은 연극인들의 분노가 예전에 비해선 많이 줄었지만, 아직 미흡하다, 실천해야 한다,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박 연출은 “연극의 힘은 배우와 말”이라며 “아무것도 없어도 관객이 대사로 관객에게 ‘저 바람 소리가 들리세요? 라고 말하면 관객은 즉시 상상을 하게 된다. 대사로 관객과 배우가 대화하는 것은 정말 큰 마력과도 같다”면서 “아무리 다양한 매체가 발달하고 있지만, 인간이 살아있는 한, 연극은 인간과 함께 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바라본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브라보, 엄사장>에서 표현될까. “연극은 고상하다, 지루하다고 생각해서 안 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연극은 재밌고 즐거워야 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나서는 생각나는 그런 연극, <브라보, 엄사장>은 그런 연극이 될 겁니다.”
공연은 다음 달 12~15일까지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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