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인권의 완성을 위한 언론의 사명

최근 국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고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정보화 시대에 이와 관련된 뉴스가 국민들에게 공유가 되고 때론 정보의 홍수 속에 가짜 뉴스가 난무하면서 이를 검증 하는 것도 일이 됐다.

코로나19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해 중국 내 사망자가 최근 2천5백명에 이른다.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지만 실제 사망자 수는 중국의 언론 통제 상황을 감안했을 때 훨씬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얼마 전 코로나19로 재앙과 같은 상황을 예견했던 중국의 의사 리원량은 환자들을 돌보면서 사망했다. 중국 전역에서 언론을 억압하며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중국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이 관련 기사와 SNS를 더욱 강하게 검열하고 있지만 추모와 정부를 비판하는 글은 이어지고 중국 일부 교수들은 언론자유가 보장됐다면 이런 재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리원량 사망일을 언론자유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언론은 정치권력이라는 거대 괴물집단 아래 벌어지는 민주주의 파괴와 정의, 공정, 알권리의 유린 행위를 알리고 비판해야 한다. 살아있는 권력이 저지른 불법비리와 권력남용을 때론 현장으로 소환해야 한다. 언론이 사명을 다하는데 불굴의 용기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리원량의 죽음을 통해 중국의 민주주의는 완성이 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희생과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 가는 민주주의의 초석임을 성찰할 수 있다.

사회학자 토인비의 ‘역사는 창의적인 소수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라는 말처럼 인권의 시대의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 여기에 언론은 감시견인 워치독(Watch dog)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언론들은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 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버린 언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랩독(Lab dog)은 결코 권력구조에 비판적일 수 없다. 다만 거기에 동화되고 기생할 뿐이다.

다만 우리사회에는 경비견과 같은 가드독(Guard dog)의 역할을 하는 일부 언론이 있다. 그 자신이 기득권 구조에 편입돼서 권력화 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한다. 얼마 전 우한 동포들을 진천과 아산지역에 격리치료 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주민들에게 협조를 부탁하는 도지사와 장관에게 계란을 투척하면서 격렬히 항의하는 영상을 방영했다. 그리고 이들을 지역이기주의 표상으로 폄하 했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항의는 격리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주민과의 협의가 없었던 것의 항의다. 실제로 입소 할 때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화합을 얘기 할 때 분열과 불안을 조장한 것은 언론이다. 우리사회가 이만큼 차이와 차별을 혐오하고 평등한 사회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탄압 속에서도 진실을 알리고 지켜 내려고 희생한 창의적인 소수의 언론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희남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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