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영화 ‘기생충’으로 보는 사회학

봉준호 감독이 제작한 영화 <기생충>이 4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후 국내외에서 환호의 열기가 대단했던 반면에 사촌이 땅 산 게 배가 아프기라도 하듯이 말도 많다. 자국의 영화 표절이라고 시비하는 인도의 영화감독, 좌파 감독에게 상을 준 미국 영화예술아카데미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항의하는 국내의 칼럼니스트, 영화의 메시지보다는 한국의 주거난에 초점을 맞추어 비난하는 일본과 국가 간의 불편한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차라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봐야겠다고 조롱하는 미국 대통령 등 시비가 만만찮다. 정말 배가 아파서 그런 걸까? 심보가 못 돼서 그런 걸까?

‘기생충’이란 다른 종(種)의 체내 외에 붙어 해당 생물의 양분을 얻어 살아가는 진핵세포로 이루어진 무척추동물인 거머리와 같은 붙어살이벌레를 말한다. 정치적으로는 극우사상과 제노포피아(외국인혐오)를 기치로 내거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성향으로 외국인이나 이민자들과 그들에게 우호적인 자국민을 지칭할 때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자기와는 생활환경이 다른 상대계층을 비하하거나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일제식민지 시대 ‘룸펜 인텔리겐치아(지식인)’도 그렇게 조롱당했다.

1930년대 경제공황의 여파로 식민지 조선에는 실업자들과 부랑인들이 넘쳐났다. 그들 중에는 일본이나 미국에 유학하고 온 지식인 실업자들도 꽤 있었는데, 사회는 이들을 가리켜 ‘룸펜 인텔리겐치아’라고 놀려댔다. 원래 룸펜(Lumpen)은 사회에서 낙오된 부랑자나 실업자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누구보다 더 많이 배우고 누구보다 더 사회적으로 공헌해야 할 그들이 일거리가 없이 빈둥거리면서 근대화의 선도자라도 된 듯이 ‘모던 껄’, ‘모던 뽀이’ 역할만 해대려니 눈꼴 시렸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도움이 되지 않았던 그들을 룸펜 인텔리겐치아, 즉 사회의 기생충이라고 조롱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봉준호의 영화가 고발하려는 기생충은 무엇이었을까? 현대 사회의 지독한 양극화 현상이 아니었을까? 인권을 중시해야 하는 민주 사회에서 철저히 인권을 무시하는 신자본주의만 숭상하고, 자기와는 다른 사람을 서로 기생충처럼 여기는 현실을 고발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들은 순진하여 무시당하고 이용당하는 힘없는 국민이기 보다 극우 제노포피아일수도 있겠고, 밥값도 못하는 게 혈세만 낭비하며 겉멋만 부리는, 자기 역할도 못하면서 힘만 과시하려는 수많은 현대판 룸펜 인텔리겐치아들일 수도 있겠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가리켜 ‘미련한 자’라 지칭하고 그들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고(잠언12:23), 미련한 것을 쏟아 내고(잠언15:2), 자기 의사를 드러내기만 좋아한다(잠언18:2)고 꼬집어 말하고 있다. 또한,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무익한 종’(마24:30)이라 고발하고 그들이 받아야 할 심판도 예고하였다.

한마디로 기생충이란 자기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는 ‘나’이겠다. 또한,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를 좋아하고 쉽게 얕잡아 보려는 책임감이 결여된 ‘너’이기도 하겠고, 도덕성이 결여된 채 애써 신(神)의 낯을 피해 살아가려는 ‘우리’라고도 하겠다.

코로나19로 인해 지구촌이 어수선하다. 우리 형편으로 볼 때 이 또한 기생충 같은 자들의 무책임한 행위의 무서운 결과이지만 이제 와서 누구 탓한다고 더 나아질까? 원망은 차치(且置)하고 서로 협력하여 이 사회가 하루라도 빨리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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