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원균은 선조의 출정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왜군과 싸우다 1597년 7월 16일, 거제 칠천량 전투에서 전사했다. 원균 뿐 아니라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도 목숨을 잃는 등 참패를 당했다. 선조는 이렇듯 현지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출전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사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옥에 갇혀 문초를 당한 끝에 백의종군하게 된 것도 현지 사정을 모르고 선조가 내리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순신 장군이 싸움마다 다 이길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현지 출신의 참모를 많이 기용했음을 지적한다. 현지 출신이기 때문에 바다의 물길에 대해 잘 알고 날짜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조류를 이용하여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해전에서는 물길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현지 출신 참모들의 의견을 크게 중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조류가 험한 한산도 앞바다로 왜군을 유인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원균은 그렇게 못하여 참패를 당했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폭풍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국민은 너 나 없이 마스크로 입을 막고 살아야 하며 대구에서는 전쟁터 같은 살벌함이 계속되고 있다.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BSI(기업 경기 실사 지수)는 한 달 새 10포인트나 떨어졌고 코스피, 코스닥 모두 연일 급락하고 있다.
10일 오후 2시 기준으로 한국인의 입국 제한을 가하는 지역과 국가는 109곳에 달해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며 러브콜을 보냈던 중국에서조차 수모를 당하고 있다.
이것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모습이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는 임진왜란 때처럼 현지의 사정을 외면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것이라는 소리가 높다. 병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는 의사이다. 그들이 모여 ‘의사협회’를 만들었고, 감염에 대한 전문가들이 모여 ‘감염학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런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내놓은 코로나 방역책은 중국인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일곱 번 건의한 의사협회는 말할 것도 없고 감염학회 역시 지난 2월 2일, 2월 15일 중국 후베이성 외 지역도 입국을 제한할 것을 권고했는데 정부는 2월 4일부터 후베이성만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하였고 문재인 대통령은 오히려 2월 13일 코로나 사태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것이다. 그런데도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국회에서 감염학회가 중국 전역 차단을 그다지 추천하지 않았다고 왜곡 발언을 했다. 그러니까 감염학회의 의견을 귀에 담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박 장관은 코로나 감염의 책임을 ‘한국인 탓’으로 발언하여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도대체 어느 나라 장관이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스크 대란도 해결 못 하는 무능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이처럼 중국에 대해 저자세도 부족하여 납작 엎드리는 속내는 무엇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매달리기 때문인가?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와 같은 위기에는 정치적 계산보다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방역주권’이다.
북한이나 러시아 몽골 같은 나라가 중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해 버리는 것, 이스라엘이 우리 한국인들 태운 비행기가 그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자기들의 비용으로 전세기를 마련, 내쫓듯 돌려보내는 단호함….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사안들이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는 이렇듯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나 꼼수가 있어서도 안 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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