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진화하여 나타나는 새로운 질병이 인간의 나약함을 시험이라도 하듯 우리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일상이 코로나19 사태로 한순간에 멈춰서고, 그저 진정되기만을 기다리는 신세이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수 있음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늘 그랬듯이 이번 사태도 지혜롭게 극복해낼 것이다. 질병이 잠잠해지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 그간의 힘든 싸움을 잊은 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인류는 새로운 질병의 도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개인은 잊고 살더라도 국가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환자 발생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이곳저곳으로 급속하게 전파되는 상황에, 혼돈스러운 방송과 관계기관의 브리핑을 방안에 틀어박혀 종일 뚫어지게 응시한다. 어느덧 머릿속에는 집단감염,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개념이 각인되고, 마스크의 중요성마저 절감하며, 내가 이 아파트에 격리된다면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스친다.
집단생활이 일상인 구조 속에서 타인과의 거리두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직장의 일도 다수가 모인 속에서 이루어지고, 거주하는 아파트의 삶도 다수가 함께해야 하는 구조이다. 배달로 버텨 보며 난생처음 며칠간씩 반복해보는 아파트에서의 격리 생활은 마치 감옥과도 같아 견디기 쉽지 않다. 개인주택이라면 마당에라도 나가 볕이라도 쬐고 뛰어라도 보련만, 현관 앞이 바로 이웃과 공유해야 하는 공간이다 보니 바깥은커녕 1층 로비에조차 타인을 피해 나갈 수가 없다. 운동 삼아 방안과 거실을 걸어 다녀 보지만 층간소음으로 조심스럽기만 하다. 비로소 아파트가 타인과 같이 살아가는 주거시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관을 나서 복도를 지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반드시 타인과 공유해야 한다. 나만이 누릴 수 있는 내 집에 산다고 생각했는데, 타인과 함께 사는 집이었다.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타인과도, 쓰레기나 동물들과도 함께 이동해야 하며, 마주치고 싶지 않거나 함께 하고 싶지 않은 타인과 늘 일정 부분 동선을 같이 해야 하는 아파트의 삶이다. 과연 많은 이들이 살아야 하는 집이 이런 공동주택으로 괜찮나 하는 의문이 든다.
모두가 타인을 배려하는 이상적 행동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상황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개인의 이기적 행동마저 자유의 영역이라 외치며 이웃의 불편함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주거형태가 공동생활을 강요받는 아파트는 아닌 것 같다. 정부는 인구집중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는 공동주택의 폐해에 눈을 감고, 여전히 수도권에 주택공급이 부족하다며 대규모 아파트 건설의 신도시 정책을 남발한다. 언젠가 모든 국민을 수도권의 밀집된 아파트에 살도록 할 기세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집단감염과 자가격리를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살아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전염력과 치사율이 더 높은 무서운 질병이고, 지방이 아닌 서울수도권에서 시작된 대규모 전파였더라면 한국은 대혼란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지역 균형발전의 참다운 가치를 인식하고 선거를 위한 입발림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대도시에 밀집해 사는 구조를 해소하고, 대규모 공동주택인 아파트도 개인주택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