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고통 속에서 배워야 하는 본질적 진리

요즘 전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이다. 이 신종 바이러스는 모든 세계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즈니스든 종교든 정치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안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의 바이러스 앞에서는 이 땅의 어떤 종교계도 예외일 수 없었다. 교회를 비롯한 모든 종교모임에도 사회적 안전거리가 요구되고 있고 심지어 주일에 모이던 예배조차도 온라인 예배를 요구받고 있다. 교회와 종교계는 이제 새로운 형태의 모임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교회들은 일요일이면 모두 예배당에 모여 잘 준비된 찬양과 이벤트와 화려한 순서 속에서 주일 대(大)예배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드렸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랑과 공평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사람 숫자로 대예배와 소예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인간적인 편의상 성도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를 대형교회라 부르고 성도들이 적은 교회를 작은 소형교회로 구분한 정신은 이미 현실 속에서는 굳어져 있었다. 코로나19사태앞에서 교회는 크든 작든 이제는 예배형식에도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미디어의 시대 속에서 이미 기존교회들에 실망감을 느끼고 온라인에서 예배를 드리던 성도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교회가 다 아는 현실이다. 좋든 싫든 지금 교회들은 방송예배를 드리고 있다. 대안이 필요했던 교회들은 학교운동장을 이용하여 ‘드라이브인(drive in)예배’도 시작하고 요즘의 대세인 유튜브 방송도 예배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 이해되는 예배방법의 변화를 누가 뭐라고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시점에서 교회와 종교계는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 ‘과연 지금 교회가 예배의 방법을 바꾸고 방송장비를 사들여 교회 안에 작은 방송실을 만들어 예배형태를 바꾸는 것에 초점이 있어야 하는가?’를 말이다. 성경 사도행전 8장에 있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 모든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진 것의 의미가 예배의 형식을 바꾸라는 하나님의 의도였는가?’를 말이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현실을 단순한 방법을 바꾸는 시도로 본질로 돌아가는 있을까?

교회는 큰 건물을 짓고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첨단기술을 도입하고 사회보다 빠르게 문화적인 선도를 하는 기능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교회의 더 큰 강력한 본질은 올바른 믿음을 고백한 성도들이 자신의 생활터전 위에서 신앙을 기뻐하며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품어가는 모습으로 본질이 드러나야 한다. 참된 영성의 경건한 예배는 는 성도들의 자발적인 종교적 기쁨이었다. 교회가 모여드는 성도들의 머리숫자로 힘의 기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시민의식은 섬김이며 신앙의 기쁨을 통한 작고 어려운 사람을 섬기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말 그대로 재앙이다. 그러나 이 재앙 속에서 교회는 먼저 스스로를 회개하고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는 모이는 교회와 더불어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기능을 이젠 해야 할 때이다. 코로나19를 이기는 힘은 교회가 좌ㆍ우가 아닌 하늘의 기준으로 모두를 품고 사랑하는 이 능력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는 오늘의 현실 앞에서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만 한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 이슬람 선교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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