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나돌던 유머 한 토막. 어느 고등학교 학생이 늦게까지 운동장 한쪽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깊은 숨을 몰아쉬며 울고 있었다. 마침 담임선생이 지나다 그 학생을 발견하고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학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내일이 국회의원 선거 날이잖아요? 그런데 아버지가 출마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낙선하면 우리 가정이 망합니다. 아버지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할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실 선거라는 게 모든 걸 걸고 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가져 올 후폭풍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러니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라는 식으로 혈투를 벌이는 게 선거다.
그런데 4ㆍ15 총선은 바로 코앞에 다가왔지만, 옛날의 그 뜨겁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했던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저질 꼼수만 난무할 뿐 조용하다. 심지어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춰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이 난장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개학조차 못하니 그럴 염려도 없다. 역시 코로나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조국 전 법무장관 검찰수사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등, 대형 폭발물들이 ‘코로나’라는 쓰나미에 다 묻혔으니 누가 웃고 누가 울까?
지금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투표율도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익숙해 투표장에 줄 서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특히 노년층이 투표장에 나가는 것을 꺼린다는 것.
노년층은 바이러스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불안할 뿐 아니라 도대체 연동형 비례대표니 위성정당이니 하는 새 선거법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일부 우려대로 노년층의 투표율이 저조해진다면 누가 웃고 누가 울까? 참으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가 이렇게 괴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코로나 31번 확진자(신천지 신자)가 세상을 시끄럽게 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이것이 공장 문을 닫게 하고 시장경제를 통째로 흔들면서 사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에 누가 출마하고 공약은 어떤가를 생각하기보다 우리 동네 어느 약국에 가야 마스크를 살 수 있는지가 더 시급한 문제가 됐고, 골치 아픈 위성 정당이 어떻고 하는 뉴스보다 당장 코앞에 닥친 자식들의 개학문제가 더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이번 4ㆍ15총선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것 같다. 국가채무의 엄청난 부담을 짊어지고 내리는 결단인데 이것이 과연 보약이 될 것인지, 아니면 단발성 아이스크림으로 끝날 것인지….
역시 코로나가 가져온 쓰나미다. 그래서 대형 이슈 때문에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쏟아 내는 웬만한 공약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장 불리한 쪽은 정치 신인들이다. 물갈이한다고 각 당이 신인들을 많이 발굴해 냈지만, 그들이 설 공간이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유권자 다수를 접할 기회가 없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하고 외치고 싶어도 그럴 무대가 너무 제한적이다. 그래서 이처럼 쓰나미에 매몰되어 버린 이번 선거 결과도 걱정이다. 어떤 후보를 고를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 밤에 결정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둠 때문에 보이는 시야가 한정적이고 낮에 비해 밤은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4ㆍ15 투표 역시 코로나 쓰나미에 휩쓸려 있지만, 밤의 장막에 갇혀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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