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춘재 백서’, 경찰의 용기를 기대한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백서가 나온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백서 제작의 초기 단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춘재 사건은 한국 강력사건사에 남는 희대의 연쇄살인이다. 1986년 1월부터 1994년 1월까지 경기 화성과 충북 청주에서 이어졌다. 이춘재가 살해한 피해자는 15명, 기타 성범죄가 30여건에 이른다. 미제 상태로 공소시효를 도과했다는 점도 특별하다. 기록으로 남기기에 더 없이 가치 있는 백서라 본다.

예상해보는 백서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수사상 과오에 대한 반성이다. 기본적으로 이춘재 사건 수사 자체는 실패했다. 총 18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됐고, 3천여 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다. 그럼에도, 8차 사건을 제외하고는 범인을 잡지 못했다. 모든 연쇄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도 2006년 끝났다. 한국 형사 사건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연쇄살인 사건에서 경찰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백서에서 상당 부분 남겨야 할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 수사의 승리다. 2019년 9월 경찰은 이춘재를 범인으로 특정했다. 연쇄살인사건 증거물에서 확보한 DNA와 이춘재의 DNA를 대조해 얻어낸 결과다. 당시 이춘재는 처제 성폭행 살해 사건으로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수사 측면에서는 끝난 사건이지만, 경찰의 의지가 밝혀낸 진실이었다. DNA를 통한 과학 수사로 영원한 미제는 없음을 세상에 보여준 결과다. 역시 백서를 통해 후대 경찰에 전해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이춘재가 특정된 이후 경찰은 온갖 비난에 직면했다. 태안읍 반경 2㎞ 이내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이었다. 범인은 아주 오랜 기간 그 범주 내에 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수사 오류가 있었다. 잘못된 혈액형에 의존한 수사, 허술한 공조가 드러난 수사, 비과학적 탐문 등이 드러났다. 특히 8차 사건의 범인도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 자백으로 드러나 인권 침해 오점까지 남겼다. 과학 수사의 쾌거를 무색케 했던 과거 경찰의 오류들이었다.

경찰의 범죄 백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사건 등 여러 사건이 백서로 제작됐다. 이들 사건 백서와 이춘재 백서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앞선 사건들은 모두 경찰이 잘한 수사였고, 이를 자랑스럽게 기술한 백서였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백서는 경찰의 과오를 상당 부분 기술해야 한다. 경찰 조직에는 뼈아픈 고해성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경기남부경찰청의 백서 제작 결정을 높이 사는 이유다.

바란다면, 제작 과정 또는 검토 과정에 경찰 조직 외 관련자ㆍ전문가 등의 참여도 배려됐으면 좋겠다. 어렵게 내린 결정인 만큼, 백서가 후대에 당당할 수 있는 객관적 내용으로 마무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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