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27 판문점 선언 2주년…이산가족에게도 ‘봄’이 올까

28일 오후 수원에 거주하는 (왼쪽부터) 백은숙(66)ㆍ백명숙(81)ㆍ백영자(77)ㆍ백영길씨(79) 남매가 북한에 남겨진 맏언니 백혜숙씨(86)의 사진을 보며 그리워하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이산가족 상봉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실향민들의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윤원규기자
28일 오후 수원에 거주하는 (왼쪽부터) 백은숙(66)ㆍ백명숙(81)ㆍ백영자(77)ㆍ백영길씨(79) 남매가 북한에 남겨진 맏언니 백혜숙씨(86)의 사진을 보며 그리워하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이산가족 상봉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실향민들의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윤원규기자

“그립고 그리운 동생 명숙이 보아라…보내준 편지를 눈물 속에 날 새는 줄도 모른 채 읽고 또 읽었구나.”

28일 수원에서 만난 백명숙 할머니(81)와 백영길 할아버지(79)는 먼 이북에 홀로 남겨진 첫째 언니의 사진과 편지를 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육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백 할머니는 1945년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내려왔다가 38선이 그어지면서 이산가족이 됐다. 고향에는 조부모와 당시 11살이었던 첫째 언니만 남았다.

백 할머니는 “북한에 있는 언니가 코로나19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건강하게 잘 있는지 걱정돼 매일 밤 눈물이 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 할머니의 가족이 남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46년 북에서 뒤늦게 출발한 아버지와 셋째 백영길 할아버지는 해주에서 공산군에 붙잡혀 3개월 동안 보안소에 갇혔다. 결국 보안소를 탈출한 백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남쪽을 향해 도망쳤다. 매서운 추위 속에 포천까지 100㎞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던 백 할아버지는 당시 5살에 불과한 어린 아이였다. 백 할아버지는 “아버지 손을 부여잡고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넌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고 회상했다.

백 할머니의 어머니는 1997년 건강이 악화해 무의식을 오가는 중에도 고향 주소를 읊조리다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2000년 1차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첫째 딸을 만날 준비를 하다가, 결국 다시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이들 남매는 러시아에 있는 목사를 통해 북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주고받다가, 이마저도 끊겨 2002년 이후로는 생사 확인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아 ‘이산가족 상봉 추진’을 언급하면서, 지난 2018년 이후 논의에만 그쳤던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이뤄질 수 있을지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 “코로나19 위기가 남북 협력의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며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8일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1988년부터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누적 13만3천382명이다. 이 중 생존자는 38%에 불과한 5만1천837명(경기지역 1만5천636명)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만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4천914명이 세상을 떠나는 등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고령에 접어들며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추진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대면상봉은 북한과의 협의가 필요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 적극 추진 중”이라며 “그 외 화상상봉, 영상편지ㆍ서신 교환 등 이산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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