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 그리운 동생 명숙이 보아라…보내준 편지를 눈물 속에 날 새는 줄도 모른 채 읽고 또 읽었구나.”
28일 수원에서 만난 백명숙 할머니(81)와 백영길 할아버지(79)는 먼 이북에 홀로 남겨진 첫째 언니의 사진과 편지를 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육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백 할머니는 1945년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내려왔다가 38선이 그어지면서 이산가족이 됐다. 고향에는 조부모와 당시 11살이었던 첫째 언니만 남았다.
백 할머니는 “북한에 있는 언니가 코로나19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건강하게 잘 있는지 걱정돼 매일 밤 눈물이 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 할머니의 가족이 남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46년 북에서 뒤늦게 출발한 아버지와 셋째 백영길 할아버지는 해주에서 공산군에 붙잡혀 3개월 동안 보안소에 갇혔다. 결국 보안소를 탈출한 백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남쪽을 향해 도망쳤다. 매서운 추위 속에 포천까지 100㎞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던 백 할아버지는 당시 5살에 불과한 어린 아이였다. 백 할아버지는 “아버지 손을 부여잡고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넌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고 회상했다.
백 할머니의 어머니는 1997년 건강이 악화해 무의식을 오가는 중에도 고향 주소를 읊조리다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2000년 1차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첫째 딸을 만날 준비를 하다가, 결국 다시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이들 남매는 러시아에 있는 목사를 통해 북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주고받다가, 이마저도 끊겨 2002년 이후로는 생사 확인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아 ‘이산가족 상봉 추진’을 언급하면서, 지난 2018년 이후 논의에만 그쳤던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이뤄질 수 있을지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 “코로나19 위기가 남북 협력의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며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8일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1988년부터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누적 13만3천382명이다. 이 중 생존자는 38%에 불과한 5만1천837명(경기지역 1만5천636명)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만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4천914명이 세상을 떠나는 등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고령에 접어들며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추진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대면상봉은 북한과의 협의가 필요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 적극 추진 중”이라며 “그 외 화상상봉, 영상편지ㆍ서신 교환 등 이산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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