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참패한 야당, 2008 올림픽 야구 기억하세요?”

정말 그 여름 밤의 뜨거움이 중국 베이징의 야구장을 달구고 있었다. 2008년 8월 23일, 한국과 쿠바의 올림픽 야구 결승전. 이승엽이 홈런을 치고 선발 투수 류현진이 선전해서 7회 초까지 3대1로 우리 대한민국이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7회 말 쿠바에서도 홈런이 터져 점수는 3대2로 좁혀진 가운데 9회 말 쿠바 공격에서 1사 만루로 우리는 위기를 맞았다. 거기에다 심판에 불만을 표시했던 강민호 포수가 퇴장을 당하는 불상사까지 겹쳤다.

1점차 1사 만루, 그야말로 다음에 상대할 타자 한명 한명에 올림픽 금메달이냐, 은메달이냐가 판가름날 상황. 벤치에 있던 우리 감독과 코치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안절부절못했고, 관중은 물론 TV 중계를 지켜보던 국민도 숨을 죽이며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 김경문 감독이 류현진 투수를 불러들이고 정대현을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세우는 것이 아닌가. 정대현은 언더핸드 투수로, 커브, 싱커 등에 뛰어난 선수이다. 정대현은 3구째에 바깥쪽 결정구를 구사, 쿠바 타자를 병살타로 유인해 위기의 불을 꺼버렸다. 야구장은 물론 TV를 시청하던 국민도 환성을 터뜨렸다.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차지 한 것이다. 투수 교체 결단을 내린 김경문 감독도 영웅이 됐다.

야구의 매력은 이처럼 구원투수라던지 대타자 같은 규칙을 만들어 위기에 처한 팀에게 그것에서 탈출할 기회를 주는 데 있다.

가령 언더핸드 투수가 던지는 공에 약한 쿠바 타자가 들어섰을 때 언더핸드 정대현을 구원투수로 등장시켜 타선을 봉쇄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바로 감독의 판단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야구를 감독의 머리싸움이라고 하고,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하여 위기를 넘기면 그를 ‘fire men’ 즉 ‘소방수’라고 한다. 소방수처럼 불난 집에 불을 껐다는 뜻이다.

이렇듯 야구 경기처럼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제1 야당인 통합당이 패배한 해답이 나온다.

무엇보다 쿠바를 꺾은 김경문 같은 감독이 없었고 작전도 없었다. 황교안 당대표와 공천 작업 다 끝내고 영입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누가 감독인지 어정쩡한 체제에서 복잡하고 민감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제대로 작전 지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에서 코로나 재난자금 100만 원 지급에 통합당은 1인당 50만 원 지급 등 통일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한쪽에서는 돈을 푸는 것은 매표행위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까지 겹쳐 유권자들에게 혼란만 주었다.

부천 소사에서 출마한 통합당 차명진 후보의 막말 사건도 그렇다. 막말 자체도 그렇지만 이것을 처리하는 과정이 답답했다. 만약 쿠바와의 야구 결승전에서 김경문 감독 같았으면 단호하게 선수 교체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명도 아니고 탈당도 아닌 ‘탈당 권유’라는 애매한 결정을 내렸다. 야구의 명감독은 교체면 교체지 ‘교체 권유’ 같은 어정쩡한 결정은 하지 않는다. 선수 선발에서도 감독은 그 선수의 득점력이 있느냐, 오직 그것만이 기준이다. 이 선수가 과거 어떤 말을 해서 조금 말썽이 됐다든지, 또는 누구의 계보라던지 하는 것은 따지지 않는다. 야구 선수는 도덕 선생님을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합당은 아무리 득표력이 있어도 당선되면 내 자리를 위태롭게 할 후보는 공천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통합당은 쿠바와의 결승전, 원 아웃 만루의 위기를 멋지게 넘길 감독 없이 완패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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