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 언론사에 입사했을 때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은 선배 기자들의 책상에 놓여 있는 잉크스탠드에 잉크를 채워 주는 일이었다. 그 시절은 펜으로 잉크를 찍어 원고지에 기사를 썼기 때문에 잉크를 채워 주는 일이 중요했다.
그런데 겨울에는 잉크가 얼어 버리는 일이 자주 있어 따뜻한 물에 데우는 등 곤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그다음 후배 기자들이 들어오면 이 고역(?)은 그대로 이어진다. 그래도 후배들은 그 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불평하지 않았다. 이렇게 언론사도 선후배 의식이 강했다. 선후배 의식은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다. 사석에서도 선배님, 형님 하는 호칭이 일반화돼 있는 것이 그런 것이다. 서양 사람들처럼 선배를 ‘존’이니 ‘마이클’ 하는 식으로 불렀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식훈련’은 학교 때부터 쌓여 왔기에 사회에 나와 서도 ‘형님’ ‘언니’ 문화는 더 두터워질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좌담회를 하거나 오락 프로에 출연해서도 선후배를 따지고, 조직폭력배사회에서는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얼마 전 운동권 출신 정치인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역시 같은 운동권 출신의 어떤 인사를 가리켜 ‘그 형님은~’하고 말하는 것에서 형님 문화는 우리 사회에 강한 DNA가 되고 있음을 느꼈다.
지난달 국회의원 선거를 했지만, 국회처럼 선후배 따지는 곳도 없을 것이다. 초선이니 재선, 삼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정말 초선으로서는 여간 활약을 하지 않고는 그 존재감이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정치문화도 그렇다.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YS(김영삼), DJ(김대중)의 ‘40대 기수론’이 바람을 일으켰다.
이 바람 속에 이철승(李哲承)씨도 49세로 40대 기수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의 원내 총무였던 YS가 40대 기수의 대세론을 주장한 데 대해 같은 당의 유진산 총재가 ‘구상유취(口尙乳臭)’라고 깎아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중국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인 데, 40대 YS를 ‘아직 입에서 젖 냄새가 나는 아기’ 취급을 한 것이다. 그 당시 67세에 이른 노정객(老政客) 유진산 총재의 눈에는 40대 젊은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이 ‘젖 냄새 나는 아기’로 보였던 것이다.
과연 40대 기수들이 이와 같은 ‘형님문화’의 벽을 깨고 정치 전면에 나설 수 있었을까. 불행히도 한국적 정치 풍토는 그것을 허용하지 못했고 이들이 대통령이 되고, 정치 판도를 바꾸는 데는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40대가 아닌 60~70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그러는 20여 년을 거치면서 이제는 세대가 아니라 상도동(YS), 동교동(DJ), 청구동(JP)으로 불리는 정치 지형을 형성했으니 이른바 ‘3金 시대’가 그것이다. 그 3金의 치열한 경쟁과 이합집산, 부침이 계속되었으나 세대교체와 정치혁신 같은 것은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4ㆍ15 총선을 치르고 나서 우리 정치계에 ‘젊은 피’의 수혈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선거에 참패한 야당에서 이런 목소리가 높은데 심지어 ‘40대’가 아니라 30대를 외치기도 한다.
80년대생에 30대로 2000년대 학번을 이르는 ‘830세대 기수론’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유럽의 30대 총리, 대통령을 예로 들면서 우리도 해보자는 것인데 문제는 ‘구상유취’에 젖은 ‘형님문화’다. 이 벽을 허물 수 있을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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