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K-컬쳐와 어린이문학

K방역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드높아진 요즘 한국의 프로야구, 프로축구에까지 세계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일이 우리가 아닌 서구인의 몫이 되는 날이 온 것이다. 한국의 프로스포츠가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 그 실력이나 위상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이 크지만 어찌 됐던 결론적으로는 K스포츠의 흥행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BTS, 기생충 그리고 이제는 야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 휴대폰과 현대 자동차로 떠올려지던 한국의 이미지가 음악과 영화, 스포츠 등의 대중문화로 미국을 강타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K컬쳐를 소개하는 이 기사가 놓친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다. 지난 4월에 한국이 세계적으로 빛나던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어린이문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 (ALMA: 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을 우리나라의 백희나 작가가 받은 것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은 씩씩하고 유쾌하면서도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삐삐의 이야기를 담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이다. 이 외에도 『사자왕 형제의 모험』 등 100여 권의 작품을 집필했으며, 이 책들은 9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오늘날까지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ALMA는 어린이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며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를 옹호했던 린드그렌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린드그렌 사후에 스웨덴 정부가 제정한 국제적인 상으로, 어린이청소년문학의 글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스토리텔러, 독서운동가 등을 대상으로 한다. 상금 500만 크로나(약 6억 원)를 포함한 연간 비용 1천만 크로나가 모두 세금으로 조달되어 공식적으로는 ‘스웨덴 국민이 세상에 주는 상’으로도 불린다.

2020년까지 ALMA를 수상한 작가는 단 20명에 불과하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모리스 센닥, 『도착』의 숀 탠,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볼프 에를브루흐 등으로, 어린이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세계적인 작가들이 수상자 리스트에 올려져 있는데, 백희나 작가가 그 대열에 오른 것이다. 볼로냐어린이도서전의 라가치상이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역시 어린이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비교되곤 하지만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점과 상금 액수가 노벨상의 800만 크로나와 맞먹는다는 점이 단연 ALMA를 돋보이게 한다. 백희나 작가의 작품은 ALMA 수상을 통해 더 많은 나라에 알려지고 더 많은 어린이에게 읽힐 기회가 공식적으로 주어진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음악, 영화, 드라마, 스포츠, 문학, 뷰티, 음식 등 세계인의 생활 전반에서 촘촘하게 K컬쳐가 그 자리를 확고하게 잡아나가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어쩌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선진국이 되었고 문화 흐름의 상류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K컬쳐 중에서도 어린이문학이 가지는 가치는 특별하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인이자,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어린이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과 그에 대한 국내외적인 관심이 더해지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어린이문학계의 세계적인 상을 우리나라에서 시상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K컬쳐의 세계적인 확산을 기뻐하며 우리가 가질 만한 포부가 아닐까 한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