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장난 GP 기관총에 국민은 불안하다

2010년 11월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다. 휴전 이후 남측 민간에 가해진 첫 도발이었다. 민간인 2명이 사망했던 당시 상황이 생생하다. 여기에 지워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은 일이 있다. K-9 자주포 고장이다. 6문 가운데 3문이 고장 났다. 북한 도발에 3문으로만 대응했다. 처음에는 2문이 고장 났다고 허위 발표를 했었다. 군 경비태세를 근본부터 우려케 하는 일화다. 그때 군은 다짐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무기 고장이 또 일어났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지난 3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 내 우리 쪽 GP(감시초소)에 총탄이 날아들었다. 북한군 GP에서 날아든 14.5㎜ 고사총 탄환이었다. 군은 ‘우리 군은 즉시 대응 사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이게 사실과 달랐다. 총탄이 날아든 건 오전 7시41분이다. 첫 번째 대응 사격이 이뤄진 건 8시13분이다. 32분이나 지난 뒤에 이뤄진 대응 사격이다. 여기엔 황당한 사정이 있었다.

기관총 공이(뇌관을 때려는 작은 쇠막대)가 부러져 있었다. K-6 기관총(12.7㎜)이다. 8시1분부터 2분여간 불발되고 있었다. 군에 따르면 문제의 공이는 사격 시도 이전부터 부러져 있었다. 최소한의 총기 소지도 안돼 있었던 것이다. 부대의 보고 은폐 의혹도 있다. K-6 고장 사실은 관할 사단장에까지만 보고됐다. 육군 지상작전사령부나 합창이 안 것은 다음날 현장 조사를 하면서다. 상황적으로 보면 누가 봐도 은폐 시도다.

대응 사격의 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초 대응 사격은 피격 32분 뒤다. 그 사이 북한군의 추가 사격은 없었다. 북한 총탄이 날아들고, 탄착 흔적 조사를 하고, 고장 난 기관총 고치고, 그리고 30발을 쏜 것이다. 충돌 현장은 GP다. 즉각 대응이 기본이다. 그런데 늦었고, 뒤늦게 갑자기 30발을 쐈다. 이 어색한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하나. 혹시 추후 보고를 위한 구색갖추기용 사격 아니었나. 누구라도 갖게 되는 합리적 의문이다.

이건 사고다. 관리 허술로 빚어진 고장사고, 상급 부대에 숨기려 한 은폐사고, 겉치레로 대처한 위장사고다. 북한군의 총격이 의도적이었는가 우발적이었는가와는 다른 문제다.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고 백번 떠들면 뭐하나. 일벌백계의 엄중함이 없으면 다 말장난일 뿐이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무기 관리를 게을리 한 사병도 책임져야 한다. 사후 처리에 책임 있는 사단장도 책임져야 한다. 이걸 안 하면 군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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