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이 특별한 언급을 했다. 수사 중인 이천물류창고 화재 사건과 관련해서다. 그는 “놀랄 정도로 총체적인 안전관리 부실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와 원청 시공사 건우의 불법을 판단할 근거들을 확보했다고도 밝혔다. 이 사건의 현재 소송법상 단계는 ‘수사 중’이다. 17명을 입건했지만 신병 처리 등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이런 단계에서 나온 경찰 책임자의 표현이다.
통상 수사기관에서는 사건에 대한 가치 판단 표현에 신중하다. 확인된 내용을 의미 부여 없이 발표하는 게 통상의 예다. 그런 면에서 “놀랄 정도의 총체적 부실”이라는 표현은 이채롭다. 더구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다. 아마도 유족의 수사 촉구에 대한 답변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유족들은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과가 발표되지 않고 있다고 항의했다. 사건 왜곡ㆍ조작의 의혹까지 제기했다.
어떤 의도든 배 청장의 발표는 사실상 사안의 중대성을 확인한 격이 됐다. 구체적인 수사 내용도 설명했는데 이를테면 이런 부분이다. “설계도에 없는 부분을 임의로 시공하거나 용접과 배관공사를 병행한 부분 등도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하청업체의 공사 현장의 불법,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의 불법을 다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입건자 17명 가운데 구속 대상도 있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쯤 되면 대략의 수사 결과는 설명된 셈이다.
유족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은 두 가지다. 직접적인 발화 원인과 책임, 그리고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의 책임과 처벌이다. 하청업체들은 현재까지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한익스프레스도 직접 책임은 없다는 입장을 흘리고 있다. 배 청장의 설명에 의하면 이 부분이 정리된 듯하다. 하청업체, 발주처 모두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적어도 책임을 물을 정황은 확보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구속해야 하는 게 맞다. 아닌가.
경찰이 모든 책임을 가려내는 건 아니다. 수사를 통해 형법에 정해진 처분을 하면 된다. 거기서 파생되는 손해배상 등은 민사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또 공사 현장의 구조적 개선은 노동관서 또는 입법기관이 할 일이다. 이 모든 절차가 형사 처분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유족들이 청와대까지 몰려가 조속한 수사 결론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놀랄 정도의 부실’에 ‘놀랄 정도의 처벌’을 내리면 된다. 유족들도 지쳐간다. 사회적 관심도 꺼져 간다. 이런 시간의 흐름으로 이득을 취하는 쪽은 유족이 아니라 화재 참사 책임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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