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강의선 못 배우는 학교

학생·교사·학교간 관계 중요
시험보는 공간으로 전락해도
필기 잘못 쓴 아이 잡아주고
소통하며 성장 도와 차별화

마스크를 쓰고 수업하는 고충 중 하나는 아이들 표정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뭐라고 말하면 잘 들리지가 않는다. 학기 초라 학생 이름도 아직 못 외운 상태다.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 웅얼웅얼대는데 내가 갑자기 “뭐라고?” 하며 나도 모르게 마스크를 벗었다. 아이들이 숨죽여 웃는다. 생각해보니 나도 참 우습다. 잘 안 들리는데 왜 마스크를 벗을까? 입으로 듣는 것도 아닌 것을.

온라인으로 영상을 올리고 기껏해야 일주일 만났는데 곧 시험을 본다. 바야흐로 학교의 기능이 달라졌다. 학교에서 배우기보다는 집에서 각자 배우고 학교는 그저 와서 실력을 겨룬 뒤 그 실력을 순서대로 세우기만 하는 그런 곳. 일주일 동안 시험을 앞두고 총정리를 하고자 했던 나의 야심찬 계획을 바로 수정한 뒤 학생들에게 칠판에다가 ‘3R’을 썼다.

학교가 갖고 있는 기능은 오직 이 세 개다. 첫째도 관계, 둘째도 관계, 셋째도 관계다. 첫째는 학생과 학생, 둘째는 학생과 교사, 셋째는 학생과 학교다. 선생님은 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가르치려 한다. 그래서 첫 시간에는 우리 학교신문을 갖고 학교 행사와 더불어 선생님들의 글, 학교 구석구석을 소개해 주었다. 도움반을 찾아간 기사를 읽고 도움반 학생이 있어서 도리어 학교에 일자리가 생긴다면서 그들의 소중함을 쓴 소감이 인상 깊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생각공책을 발표시켰다. 과제 중 하나를 발표해도 좋고, 생각공책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그 이유를 말해도 좋다고 했다. 나름 시나리오까지 만들어서 조리있게 발표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이 어여뻤다. 오늘은 학습지를 나눠주고 간략하게 수업을 한 후 학습지를 채우는 동안 복도에서 한 명씩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마른 체구의 아이인데 자신은 생각보다 체력이 굉장히 좋고 초등학교 때는 육상부, 중학교 때는 축구부였으나 체육의 길이 좁아서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했다. 생각공책도 ‘밥’이라고 써놓고 밥 먹듯이 공부를 하겠다며 포부를 밝힌다. 열 쪽의 학습지를 겨우 네 쪽밖에 못 나가고 아이들도 몇 명 못 만났으나 생각공책에 꼬박꼬박 써놓은 배움일기와 과제는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데가 있었다. 비록 학교가 시험밖에 못 보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작은 단위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읽어주고 의미를 불어 넣어줄 때 학교는 1타 강사가 즐비한 인강과 차별화가 되리라.

‘일제 강점기의 냉혹한 현실’이라고 말했는데 아이 필기를 보니 ‘네모칸 현실’이라고 썼다. 재빨리 아이 필기를 바로잡아 주었다. 그렇게 사랑을 쏟는 것이 바로 학교의 기능이겠지. 스스로에게 재확인시키며 첫 주를 마무리했다.

박희정 의정부 발곡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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