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신뢰받는 교회가 되는 기회를 잡자

한 나라를 구성하고 한 사회가 구성될 때 건강한 나라와 건강한 사회는 다양한 일거리와 다양한 문화와 산업이 공존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70년 전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잿더미였던 국가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도약적인 발전을 해 왔다. 그리고 전 세계는 이런 한국의 발전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가 도약적인 발전을 하며 한국 경제발전 수치의 그래프가 급상승할 때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와 사회의 기업 윤리적 가치도 함께 성장했는지는 돌아보아야 한다. 많은 재계의 총수들이 경제법 위반으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야 했고 국민이 대 기업에 보내던 고마운 시선들이 반기업적 정서로 돌아서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현상이 교회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이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등장했듯이 교회도 대(大)교회들이 20C 말까지 한국사회에 화두가 될 만큼 많이 세워졌다. 대형교회들의 영향력은 교계와 사회 속에서 매우 커져 왔고 한국사회의 기업구도처럼 교회들도 대형교회 중심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전염병 사태를 겪으면서 대형교회들의 역할론이 다시 회의적인 화자가 되고 있다. 국민과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이 삶의 위기를 맞이하는 코로나 19의 총체적 난국 속에서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까. 일 년에 수백억의 헌금이 모여지는 유명한 대형교회들의 그 헌금들이 하나님을 위해 쓰인다고 말하지만 결국 건물과 인건비와 교회 내의 교인들을 위해 90% 이상이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의 모습 아닐까. 지금 이 상황 속에서 과연 교회는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일까.

국민이 가장 어려울 때이니 교회의 예배당을 팔아서 구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국민이 이해하고 적어도 교인들이 이해할 수준의 헌신적인 재난극복을 위한 구제비는 이럴 때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가장 어려울 때에 교회의 예비비는 전부 소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교회는 이웃과 함께 배고픔의 고통을 나누어야 하고 함께 굶주림의 고통을 나눌 때 그 모습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회의 존재인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교회에 대하여 관대했다. 교회가 사회에 무관심했듯 사회도 교회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코로나19가 몰고 오는 세상은 그런 안전지대가 없음을 교회들은 빨리 인식해야 한다. 교회가 스스로 자정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면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며 개혁하는 중세의 아픔을 한국교회가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0장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구제를 가르치신 예수님의 메시지가 오늘의 코로나19의 총체적 난국 속에서 교회들에 큰 도전으로 여겨지기를 기도해 본다. 교회의 곳간은 곡식으로 쌓여 있는 곳이 아니라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 순환돼야 하는 곳임을 교회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큰 전염병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피할 곳 없던 가난한 사람들 옆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던 교회가 함께했었다. 그리고 그 전염병이 끝나면 그 사회는 교회라 불리 우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회에 두 배, 세 배로 늘어나 있었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그 신뢰의 기회를 붙잡아야 하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오늘이지 않을까.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ㆍ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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