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연습실과 카네기 홀

연주자로 사는 길은 행복한 일이지만 무대에서 비치듯 늘 화려하고 우아하지 않다. 고난의 연속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예술계에서의 생존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렵다. 험한 경쟁을 뚫고 작은 무대에서라도 인정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다. 대부분 연주자는 걸음마를 시작할 때 악기를 배우기 시작하여 긴 수련기간을 거치며 연주자로서의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젊은 시절을 불태운다. 이런 긴 시간의 연마과정을 수행하였지만, 그 보상은 충분하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보상은 부귀영화가 아닌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수입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기초적인 생활을 연주수입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연주자들의 비율은 전체 연주자들의 10%도 넘지 못한다고 본다. 이로 인해 연주자로서의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한 직업을 찾아 음악을 떠나는 안타까운 젊은 음악인들을 자주 보았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고민 끝에 창단된 심포니 송 오케스트라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다.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은 나 외에 없다’ 라는 의식이 젊은 연주자들에게 필요하다. 부모, 형제, 선배가 일시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결국 본인의 창조와 혁신으로 앞길이 판가름 된다.

어릴 때부터 서너 평 미만의 아파트 한구석 또는 작은 연습실에서 홀로 외롭게 수행과정을 거친 많은 젊은 연주자들과 일을 해 보면 여러 계층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만을 위해 음악을 하는 연주자 - 음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것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이다. 어릴 적부터 소위 고급레슨, 이어지는 명문대학에서의 학업과 해외 유학 등 많은 코스를 거쳤지만 좁은 연습실에서 나오는 음악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보인다. 지금도 거의 매일 하는 말이지만 예일대 교수 시절 음대생들에게 늘 해주던 말이 있다. “한 평의 연습실이 너의 무대가 아니라 3천명 청중이 가득 차 있는 카네기 홀 무대라고 생각하고 연습하라.” 연습하는 방법부터 바꿔야 하는 음악도를 자주 보았다. 특히 한국의 연주자들에게 필요한 조언이다. 작은 연습실에서의 스스로 만족하는 악기의 연주보다 더 크고 웅장한 콘서트홀을 나의 소리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청중과의 소통과 적극적인 연주 태도를 기본으로 하여 연습을 해야 효과가 있는 것을 강조한다. 무대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3층 끝자리의 청중에게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전달하는 사명을 갖고 한 음 한 음절을 연주하도록 변화를 해야 한다.

남의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내 음악을 남에게 맞추는 능력을 소유한 연주자 - 직장에서도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을 귀히 여기듯 우수한 오케스트라는 서로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연주자들이 많이 모인 곳이다. 내 소리가 크면 남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또한, 스스로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지혜를 갖도록 다양한 연주형태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자신의 음악을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연주가 계속 취소되고 있다. 연주자들은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요즘 빈번히 산과 들에서 또는 축구장에서 젊은 연주자들과 만난다. 좁고 답답한 연습실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만남 속에서 다양한 교감을 쌓는 것이 더해져 가장 아름다운 무대가 될 수 있다. 이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고귀한 레슨이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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