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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더클래식] 인간 승리의 표상 베토벤-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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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더클래식] 인간 승리의 표상 베토벤-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한평생 삶에 도전하고 투쟁하며 전쟁과도 같은 예술 인생을 살다간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운명 앞에 당당했던 그는 인간 승리의 표상이었다.

베토벤은 사색에 빠져 길을 걷던 어느 날 교회당 종소리가 점점 멀어짐을 느꼈다.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종소리가 더 이상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도, 세상의 어떤 소리도 그에게만은 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그저 고요해진 세상. 두렵고 가혹한 운명은 벌써 한 음악가의 삶을 통째로 삼켜 버렸고, 이미 그를 절망 속으로 빠뜨렸을지도 모른다.

과연, 더 이상 귀로 들을 수 없는 이 작곡가 베토벤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베토벤은 완전히 청력을 상실해 버렸지만, 그는 이 엄청난 운명의 시련 앞에 당당히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그 유명한 대작 <교향곡 5번 ‘운명’>, <교향곡 6번 ‘전원’>, <피아노 협주곡 ‘황제’> 등을 세상에 내 놓으며 운명 앞에 보란 듯이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인간승리의 표상으로 남아있다.

<엘리제를 위하여>, 베토벤의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을 것이다.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라면 연주해 보았을 것이고, 이 아름다운 선율은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머물러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 곡의 작곡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고, 더 어려운 곡까지도 연주하고픈 욕망에 피아노를 더 열심히 배웠을 것이다. 베토벤의 작품이 주는 중독성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늪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어린 베토벤은 결코 모차르트가 될 수 없었다.

베토벤은 독일의 본(Bonn)에서 음악가 집안의 장남으로 1770년 12월 17일 태어났다. 궁정의 테너 가수였던 아버지, 궁정악단 단원으로 시작하여 음악감독 지위까지 오른 할아버지, 그 덕분에 제법 부유했던 집안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이제 겨우 세 살이었을 때 아버지 요한 주정뱅이가 되어 집안을 돌보지 않았고, 그때부터 가난은 베토벤을 지독하게 따라다녔다. 어려운 가정 형편도 문제였지만, 주정뱅이가 된 아버지가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할 리가 없었다. 단지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을 이용해 돈벌이에 이용하려 했다. 당시 베토벤보다 14살 많았던 신동 음악가 출신 모차르트를 모델로 전략을 짜고, 고작 여섯 살의 베토벤을 ‘제2의 모차르트’라 칭하며 상품화해 보지만, 너무나 탁월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이미 목격한 사람들에게 베토벤은 그저 우수한 재능을 가진 어린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에 상심한 베토벤의 아버지는 더욱 술만 마셔 댔고, 어린 베토벤은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당연히 집안은 더 형편없이 변해갔고 베토벤은 열한 살 때 결국 학업마저 중단하게 된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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