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칠월과 붓다 명상법

유월이 지나고 칠월을 맞았다. 코로나19로 일상의 활동이 많이 줄었고, 장마도 시작되고 있어 활동이 더욱 줄어들었다. 사람들 활동이 줄었을 때 나는 따로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는 독서고, 다른 하나는 명상이다. 얼마 전부터 나는 우리 학교 이자연 교수님께서 쓴 『붓다의 명상법』(소명출판, 2020)이란 훌륭한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독서도 하고, 독서 내용이 붓다의 명상법이니 명상도 저절로 하게 되는 것 같다.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불교에서는 음력 4월15일부터 6월15일은 하안거 기간이다. 올해에는 윤 5월이 있어 음력 5월15일부터 7월15일까지 여름 안거를 해야 할 것이다. 안거 기간에 수행이나 기도를 인연에 따라 할 것이다. 그런데 붓다가 실제 행한 명상법은 무엇인가?

붓다의 명상법을 한자로는 지관(止觀) 수행이라 한다. 지(止)는 ‘그친다’ ‘멈춘다’는 뜻이다. 지(止)는 산스크리트로 ‘사마타’ 명상의 한자 번역이다. ‘사마타’는 ‘고요함’을 뜻한다. 이것은 붓다 이전에도 있던 요가 명상에서 온 것이다. 요가 명상에서의 사마타 명상은 붓다의 사마타 명상과 비슷하지만, 정확히 같지는 않다. 요가는 범아일여의 일원론적 유신론 전통에 있다. 즉 요가적인 명상은 신 개념에 집중함으로써 완전한 몰입 상태인 삼매에 도달하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초월세계로의 전이 상태인 신과의 합일이고, 범아일여 사상이다. 반면에 붓다는 상캬 이원론의 영향을 받았으며, 무신론적 전통에 있다. 붓다는 초월세계와 현실 경험세계의 참모습을 관찰하여 통찰지를 계발하여 중도(中道)를 추구한다. 이 통찰지의 계발은 무명을 제거하고 무명으로 인해 생겨난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행복해지는 길이다.

요가의 목적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욕심은 번뇌의 근본 원인이고, 이 욕심에서 마음작용이 일어나고 번뇌가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요가 명상에서의 사마타 명상은 산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자 어떤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한다. 이때 호흡이나 신 개념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의식마저 사라지고,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여 모든 마음작용이 끊어짐을 목표로 한다. 붓다 명상의 목적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괴로움은 무명이 근본 원인이다. 이 무명에서 마음작용이 처음 일어나 그것이 조건이 되어 다른 마음작용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12연기로 돌고 돌며 괴로움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붓다 명상법의 사마타 수행은 대상과 마음의 거리를 두고 마음을 하나의 대상 영역에 고정해 정신 통일을 길러 고요함을 계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보는 통찰지를 계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통찰지 계발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무명을 제거하여 번뇌를 꿰뚫어 부수어 영원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관(觀)은 ‘자세히 본다’는 뜻이다. 관은 산스크리트의 비파나사, 빨리어의 위빠사나의 한자 번역어다. 이는 ‘분리해서 본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거리를 두고 대상화해 자세히 관찰하면서, 그것들을 관찰 주체인 나와 동일시하거나 나의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하는 것이다. 일체는 변화하여 영원하지 않고, 그래서 일체는 다 그것의 자아가 없다. 그러니 그것에 얽매이는 것은 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좇는 것이며 괴로움이다. 이것을 알아차려 무명을 부수고 열반에 이르는 것이 붓다의 명상법이 추구하는 것이다. 붓다의 명상법은 사마타 수행으로 얻은 삼매와 위빠사나 수행으로 얻은 통찰의 지혜를 유기적으로 함께 닦는 것이다. 그래서 무명을 제거하고 무명으로 인해 일어나는 괴로움도 소멸하여 열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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