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는 고작 여섯 살의 베토벤을 ‘제2의 모차르트’라 칭하며 아들을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전략을 짜고 베토벤을 상품화해 보지만, 너무나 탁월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이미 목격한 사람들에게 베토벤은 그저 우수한 재능을 가진 어린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에 상심한 베토벤의 아버지는 더욱 술만 마셔 댔고, 베토벤은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집안의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열한 살 무렵 베토벤은 어쩔 수 없이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불타는 학구열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궁정 예배당에서 스승의 보조 연주자로 일했고, 2년 만에 정식 연주자가 된다. 그리고 5년 후 드디어 음악의 중심지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입성하게 된다. 그곳에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와 만나지만 안타깝게도 짧은 만남으로 끝나 버리고 만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모차르트는 베토벤이 위대한 음악가가 될 것을 이미 예견한다.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만남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필자의 욕심으로는, 무르익을 대로 익은 모차르트의 음악성이 열 몇 살의 베토벤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면 베토벤은 분명히 더 위대한 음악을 우리에게 남겼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지금 들을 수 있는 음악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벅찬 가슴을 주체할 수 없으니, 이보다 더한 욕심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베토벤은 또 한 번 커다란 시련을 맞게 된다. 주정뱅이 아버지와는 달리 그토록 따뜻하고 다정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이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소년 가장이라는 십자가까지 지게 된 것이다.
어린 동생을 돌보고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독학으로 꾸준히 지식과 교양을 넓혀간 베토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즉흥 연주에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명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 결과 이십 대 초반에 드디어 십 대 때 잠시 머물렀던 빈에 정식으로 입성하게 되고, 그의 모든 음악은 이곳 빈에서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연주자로서 이미 굳건한 명성을 확립한 베토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작곡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하이든이 요청으로 그의 제자가 되기도 했지만, 유난히 배움의 욕구가 강했던 베토벤은 하이든의 가르침만으로는 만족지 못하고, 몰래 다른 레슨 선생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정승용 작곡가ㆍ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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