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그 질문 기자는 ‘○○자식’이 아니었다

‘봉변’이 숙명인 게 기자라지만
정당 대표의 욕설은 다른 차원
반기문 욕설 땐 ‘충격’이라더니

쌍욕을 들었다고 했다. 멱살도 잡혔다고 했다. 벌건 대낮에 당한 봉변이다. 어느 시청의 복도였고, 시장실이 코 앞이었다. 시장 가족이 가해자였고, 피해자는 기자였다. 시장의 비위 의혹을 보도했다. 감정이 상했을 법하다. 그 보복인듯했다. 기자가 상기된 채 들어왔다. ‘맞았습니다. 공무원들은 구경만 했습니다.’ 발단은 내 취재 지시였다. 그 지시 때문에 당한 봉변이었다. 그래서 ‘동기자’에겐 지금도 미안하다. 십수년 전의 일이다.

그때부터도 십수년전이었나. 그땐 내가 당사자였다. 학생 시위 현장이었다. 취재 도중 갑자기 뒷목이 꺾였다. 인근 강의실로 거칠게 끌려갔다. 경찰 프락치라며 몰아세웠다. 신분증이 없었던 게 죄(罪)였다. 30분 넘게 추궁을 당했다. 무리 중 한 명이 들어왔다. “확인됐어, 기자 맞대.” 그제야 풀려났다. 사과는 없었다. “빨리 학교에서 사라지라”.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왔다. ‘부장님’이 웃었다. 그때 알았다. 기자 인생은 우아하지 않다.

기자들은 위안 삼는다. 가해자 수준을 탓한다. 시장 가족 때도 그랬다. ‘시장 가족이 몰상식한 거다. 그러니 기자를 폭행하지.’ 아주대 감금 때도 그랬다. ‘학생들이 사리 분별없다. 그러니 겁 없이 사람을 감금하지.’ 그러면서 애써 잊는다. 무뎌지는 과정이다. 어느덧 협박ㆍ모욕ㆍ폭행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처가 있다. 그러면 안 될 사람들이 그럴 때다. 상식 있는 사람들이 그럴 때다. 이해찬 대표 얘기다.

이 대표의 언어를 모두 문제 삼을 건 아니다. 간혹 독설이 정치 행위일 때도 있었다. 총리 때 ‘차떼기당’ 발언이 그랬다.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 들여왔는데… 그런 정당을 좋은 정당이라 할 수 있냐.” 한나라당이 발칵 뒤집혔다. 국회는 파행했다. 여론이 갈렸다. 심했다는 평도 있었고, 시원했다는 평도 있었다. 지금 유튜브에서는 ‘사이다 발언’으로 정리됐다. 스스로 ‘국면전환용’이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변명으로도 덮이지 않을 언어가 있다. 박원순 상가에서의 욕설 파문이다. 별스런 질문도 아니었다.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혹시 여기에 대해 당차원에서 대응하실 계획은 있으신가요.” 이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어 노기 띤 어투로 호통을 쳤다.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합니까, 그걸. 최소한도 가릴 게 있고….” 이어 욕설이 나왔다. “○○자식 같으니라고.” 국민들이 다 봤다.

이해찬 대표가 누구인가. 거대 집권 여당의 대표다. 국회의원 180명을 통솔한다. 말 한마디가 곧 법이다. 그날 현장도 그랬다. 함께 한 당직자가 가세했다. 이 대표를 거들며 나섰다. “기자들 질문 똑바로 하세요.” 이게 한 영상에 담겼다. 당 대표는 욕하고, 당직자는 압박하고…. 몇 번을 들어도 질문엔 잘못 없다. 충격적인 대권 후보의 자살이다. 성추행 고소장이 접수됐다. 마침 당 대표가 왔으니 물어본 거다. 이게 왜 ‘○○자식’인가.

조문(弔問)엔 어색한 질문일 수 있다. 답할 게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면 ‘답할 거 없다’고 하면 된다. 그것도 싫으면 무시하고 가면 된다. 평소에는 자주 그러던 이 대표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누가 봐도 심했다. 정색하며 나무라고, 째려보며 호통치더니, 욕설하며 쫓아갔다. 당직자가 잡아 돌려세웠으니 다행이다. 언론 탄압이 없어진 세상이다. 대체로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순간은 아니었다. 언론을 향한 압박ㆍ압제였다.

결론을 대신할 추억을 소환할까 한다. 2017년 1월 18일. 반기문 전 총장에게 기자가 질문했다.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싫었던 모양이다. ‘(질문)하지 마시라.’ 식당을 나서면서 대변인에게 말했다. “나쁜 놈들이예요.” 기자가 들었고 보도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들고 일어났다. 대국민사과를 요구했다. 열흘 뒤, 반 전 총장은 대선판을 떠났다. 당시 우상호 원내대표-지금은 박원순 차기 후보라고 꼽히는-의 논평이 남아 있다.

“‘나쁜 놈들’이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진의를 묻는 건 언론인의 당연한 의무다… 국민의 궁금증을 대신 물어준 기자에게 욕까지 한 것은 정치지도자로서 적절하지 않다… 국민에 사과하라.”

오랜만에 읽어봤다. 버릴 구절(句節)이 없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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