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 추천 위원 선정이 취소됐다. 선정됐던 위원은 전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 장성근(59ㆍ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다. 민주당의 선정 발표 직후 장 변호사가 변론한 사건이 문제 됐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박사방 사건의 피고인이었다. 해당 사건에는 사임계를 낸 상태다. 그럼에도, 장 변호사 측은 “공수처 출범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친다면 개인적으로 역사적으로 용납하기 힘들다”며 사임했다.
장 변호사가 변론한 피고인은 전 사회복무요원 강모씨다. 강씨는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과 관련된 조주빈의 공범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혐의는 과거 담임교사 A씨의 딸에 대한 살인을 조씨에게 청부하면서 개인 정보 등을 알려주고 400만원을 건넨 혐의(살인 예비)다. 또 박사방 내에서 ‘도널드푸틴’이라는 대화명을 쓰면서 활동해 범죄단체조직 가입ㆍ활동 혐의도 받고 있다. 강씨 측 가족 요청으로 선임하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장 변호사는 30년 가까이 수원에서 활동했다. 수원고법 설치를 위한 시민운동에도 앞장섰다. 최근에는 군 공항 이전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 사회에서의 인지도나 신망이 높다. 그런 만큼 이번 선정 취소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크다. 물론, 공수처장 추천 문제는 끝났다. 당사자인 장 변호사가 사임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민주당 공수처장 후보 추천 위원회도 백지화를 발표했다. 다시 추진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적하려는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선임 사건과 변호사 도덕성을 무조건 연결짓는 세태다. 이번 예가 그렇다. 변호사 선임이 곧 범죄에 대한 두둔은 아니다. 피고인 강씨는 개인정보 조회, 가상화폐 환전 등의 중요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단지, 법률적 책임의 범위나 정도를 판단 받겠다고 한다.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박사방 사건 수임’만을 부각시켰다. 근거 빈약한 비난이다.
점검해야 할 변호인의 부도덕성 기준은 많다. 통상을 넘는 과도한 선임료를 받았는지 중요하다. 피고인 선처를 위한 법외(法外) 활동은 없었는지 봐야 한다. 복대리 등 변호사 윤리 규정 위반은 없는지 봐야 한다. 이런 평가를 거쳐야 비로소 ‘좋은 선임’과 ‘나쁜 선임’이 나뉜다.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열거한 부도덕성을 입증할 어떤 정보도 없었다. 그저 ‘박사방 사건을 변론했으니 부도덕한 변호사’는 식의 단편적 결론만 뿌렸다.
‘좋은 변론’은 뭐고 ‘나쁜 변론’은 뭔가. 기소 사건의 대략 5% 정도가 무죄다. 95%는 유죄다. 앞선 셈법으로 보면 95%는 ‘나쁜 변론’이다. 이 얼마나 위험하고 황당한 구분인가. 국민을 분노케 하는 흉악범들도 모조리 변호인을 선임한다. 법정형이 사형ㆍ무기ㆍ3년 이상이면 필수적으로 변호사가 선임돼야 한다. 이른바 국선변호인 선임 기준이다. 이 경우 선임된 변호사들도 모두 ‘부도덕한 변호사’인가. 대단히 잘못된 인식이다.
장성근 변호사는 별다른 해명 없이 사임했다. 그저 ‘공수처 출범에 영향 주지 않겠다’고만 했다. 우리도 박사방 변론의 깊은 내막을 알지 못한다. 다만, 13일 하루 있었던 논란이 정상이 아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장 변호사의 예가 아니라도 그렇다. 공직에 나서는 변호사는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검증에는 합리적ㆍ객관적 분석이 따라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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