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깨어 있는 독자의 조직된 힘

“또 터졌다.” 도서도매상 인터파크송인의 부도 소식을 듣고 나온 출판인들의 첫 번째 일성이었다. 벌써 세 번째다. IMF외환위기 때, 2017년, 그리고 2020년. 2017년의 부도에서 피해 출판사들의 채권 탕감, 공적 자금 투입, 인터파크의 인수로 정상화됐으나 2000년 중 주문량이 가장 많았던 5월 지불을 앞두고 급작스레 또다시 기업회생 신청을 했다. 송인서적이 부도를 내고 회생을 거듭하는 사이 그들이 만든 태풍으로 인해 주저앉아야 했던 중소출판사는 한둘이 아니며, 특히 이번에는 선입금을 하고 책을 받았던 동네책방에까지 그 피해가 미치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한다. 연거푸 당한 이러한 사태 앞에서 도서유통구조의 공공화라든가 제3의 대안 마련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다.

격랑처럼 몰아치는 도서유통의 불안함 속에서도 출판계에 촛불과도 같은 희망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독자들이다. 적극적인 독자들의 책을 향한 자발적인 지지와 연대는 그 어떤 정책보다도 출판계에 따뜻한 응원을 보내준다. 3ㆍ1운동 100주년이기도 했던 2019년에는 그와 관련된 책들이 다수 출간되었는데 그 중 우리나라 100년의 근현대사를 개인의 인생으로 풀어낸 김지연 작가의 『백년아이』라는 그림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이 나오자 독서모임 ‘선향’에서는 『백년아이』 연보에 맞춰 대한민국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와 관련된 책, 그림책, 영화, 음악 등을 모아 『백년아이』를 펴낸 다림출판사에 건넸다. 다림출판사는 그 자료를 대형 포스터로 만들어 전국의 작은 도서관과 동네책방에 무료로 배포하며 또 다른 책 읽기의 바람을 몰고 왔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그림책 나눔을 하는 독자들이 있다. 가슴을 울렸던 그림책, 좋아하는 출판사의 그림책, 혹은 권하고 싶은 그림책을 골라 직접 구입을 하고 정성껏 포장을 해서 이벤트를 통해 꾸준히 나눈다. 정말 공짜냐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책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 공감할 것이다. 마치 맛있게 먹은 음식을 권하듯 자신이 그림책을 통해 받은 위로를 타인과 함께 나누려 그림책을 전하는 이런 이벤트를 진행하는 분들 역시 점점 많아지고 있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내가 좋았던 것을 누군가와 나눔하고 싶은 마음이 책에 닿고 있다는 것이 출판계에는 큰 응원이자 희망이다.

그 뿐만 아니다. 독자들이 직접 매거진을 만들어 책에 대해 탐구하고 토론하며 그들의 시각에서 맛깔 나게 요리하기도 한다. 슬로건도 확실하게 ‘독자기반 그림책 매거진’으로 표방하는 <라키비움J>의 이야기다. 2018년에 창간호가 출간된 <라키비움J>는 올해에 3호를 발간했는데, 발행부수도 창간호 800부에서 3호는 2천200부로 늘었으며, 출간 후 한 달 내에 거의 매진 기록을 세우고 있다. 기자단 모두 독자들이다. 그림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던 독자들이 모여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또 다른 독자들은 매번 색다르게 펼쳐지는 <라키비움J>를 열렬히 기대하고 반기며, 진정한 ‘독자들만의 그림책 마당’을 펼쳐나간다. 그들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출판계이다. <라키비움J> 3호 심층 코너에 소개된 그림책 『인어를 믿나요?』는 잡지가 출간되자마자 전 온라인서점에서 매진되었으니 말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면, 출판계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독자의 조직된 힘이리라. 그들이 있기에 태풍 속에서도 버텨내는 힘을 얻는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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