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18세기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시계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아침 5시에 일어나 홍차 한 잔을 마시는 것에서부터 9시에 집필, 오후 3시에 산책 나서는 것까지 1분1초가 정확했다.
그리하여 칸트에게 주어진 별명이 ‘인간 시계’. 오후 3시30분 보리수나무 옆을 회색 코트에 지팡이를 짚고 칸트가 지나가면 이웃 사람들이 시계를 거기에 맞출 정도였으니 그의 시간관념은 짐작할만하다.
그런데 이웃 사람들이 칸트의 움직임에 따라 시곗바늘을 돌린 것은 아날로그 시계여서 가능하다. 옛날 시계는 그렇게 바늘이 계속 움직여 시간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계와 함께 산 세대를 아날로그 시대라고 한다. 이처럼,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 차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시계다.
요즘은 거의 숫자가 자판에 뜨는 디지털시계지만 사람들의 생활 속에 이제 아날로그는 거의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과연 아날로그 시대는 끝났고 디지털 시대가 인간 의식을 지배하는가.
공장에서 생산되어 아직 판매되지 않은 일본 자동차 4대의 모델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어떤 차가 가장 성능이 뛰어 난지를 가려내게 했다. A그룹에는 프린터 용지에 사진을 넣고, B그룹에는 컴퓨터 화면으로 자동차 모델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테스트 결과 A그룹은 66%가 정답을 맞혔지만 B그룹은 43%에 그쳐 23%나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니까 비디지털 방식인 프린터 용지가 디지털 방식의 컴퓨터 영상보다 직관(直觀)능력에 있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이것은 2016년 미국 컴퓨터협회(ACM)가 사람과 컴퓨터 간의 새로운 경험들이 어떻게 창출되고 있는지를 실험한 사례 중 하나다.
이 실험은 다트마스 대학에서 20~24세 연령층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 (The Science Times. 2016. 5. 이강복 ‘디지털이 인간사고 방식을 바꾼다’ 참조) 이와 같은 실험에서 아날로그의 집중력과 인간 사고의 아름다운 여유 같은 것을 증명했으나 시대는 더욱 디지털화하고 있다.
디지털이 갖는 신속성, 정보의 대량 생산과 처리가 주된 무기다.
이런 가운데 드디어 ‘디지털 교도소’가 탄생했다. 사법제도의 교도소와 상관없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사람을 이 ‘디지털 교도소’에 가두고 모든 신상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교도소처럼 감시망도 없고 교도관이 지키지도 않지만, 디지털 그 자체가 교도소 높은 담장이 되어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작동한다는 것.
아동 성 착취의 세계 최대 음란물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러자 ‘디지털 교도소’는 그를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그렇게 판결한 판사까지도 여기에 집어넣었다. 고 최숙현 선수를 폭행, 죽음으로 몰고 간 경주시 ‘철인 3종’의 감독 등 가해자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밖에도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디지털 교도소’에 들어가 신상 털기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디지털 교도소’에 대해 신상 털기 등 개인의 인권침해가 심각할 것이라는 차원에서 경찰이 내사를 벌이는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가 탄생시킨 사회정의 운동이라며 환영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디지털 교도소’에 끝나지 않고 이미 세상을 놀라게 했던 ‘N번방’처럼 또 어떤 디지털 변종이 나타날 것인지가 두렵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