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불확실성 vs 확실성

심리학자 마리아 코니코바 (Maria Konnikova)는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주의를 기울이고 세심하게 대응하라. 확신을 갖는 것은 좋지만 더 질문하라. 안 좋은 일이 닥쳤을 때 우울해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처하기보다 상황을 관찰하고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판단하라.”

불확실성(Uncertainty)은 어떤 사물이나 일에 관해 의심되거나 확신이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해 세계는 불확실성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불확실성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은 두려움에 빠르게 젖어들어 평소의 익숙한 생활패턴 보다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패턴으로 변화한다. 이에 따른 불편함 정도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감수해야 하고 큰 문제로 삼지 않는다.

어느덧 우리 주위에 반년 이상 머무는 전염병은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annual flower(1년생 꽃)’가 아닌 ‘perennial(매년 다시 피어나는 다년생 꽃)’이 되어가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백신과 치료약이 가까운 시일 내에 개발되어도 지구촌 전체에 보급되려면 예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불확실한 심적 상태에서는 필수적인 움직임 외에는 여타활동을 기피한다.

공연이 취소되는 고통도 뒤따른다. 지구 곳곳의 예술단체들이 내년시즌의 계획과 그 성공을 예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피하거나 지나치게 움츠리는 것도 바른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지나온 수개월의 암울한 터널을 지나며 숨 막히는 이 사회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확실성을 높이고자 무슨 노력을 기울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확실성(Certainty)은 어떤 사물이나 일을 의심 없이 신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유동적이며 판단은 어렵다.”(힙포크라테스 ‘격언’)

예술은 인류역사상 가장 확실하고 고귀한 유산이다. 인간들이 힘써 추구하는 기회의 획득과 재물의 축적은 삶의 편의를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잠시 후 사라질 들판의 풀과 아침의 안개와도 같다. 예술활동을 이끌어가는 클래식 공연계는 확실한 가치와 사명감으로 담대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전보다 더욱 활발하고 확실하게 이 어두운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 지친 국민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음악적 힐링에 눈을 돌려야 한다. 죽음이 눈앞에서 바람처럼 스쳐가는 처절한 전쟁터 한구석에서 연주되는 하모니카 소리가 적과 아군의 마음을 잠시나마 포근하게 한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바르샤바 교외의 한 주택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는 점령군을 감동시킨다. 온 종일 입안에 단내가 날 정도의 훈련 후 달빛 스며드는 초소에서 읊조리는 어머니를 그리는 노래는 천사들의 칸타타였다. 음악이 평화와 위로를 가져오는 가장 확실성 있는 무기이다.

예술은 확실성의 요람이며 무덤이다. 바야흐로 황폐한 생활에 예술을 통해 활력을 전해줄 시간이 도래했다. 연주자와 연주단체들은 지속적인 탐구와 노력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장르의 연주형태를 혁신적으로 개발하여 청중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가는 것에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전염병으로 인한 예술계의 후퇴는 있을 수 없다. 예술은 청중과의 직접적인 만남으로 인해 화려하게 꽃필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숨 쉬며 느끼는 공존의식이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기력에 빠져 있는 국민을 위해 선봉에서 아름다운 노력을 기울이는 예술가들을 사랑하자. 그리고 그들이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 수 있도록 아끼고 보살피자.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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